네, 상대의 얼굴도 모르고 이름과 그 상대 집안의 명성만 익히 들어 알 뿐인 마음 없는 정략결혼 말입니다.
이 지진한 시대의 결혼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가문의 명성,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팔아서.
당신이 이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든 저택의 모든 이들은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내일 있을 결혼을 미리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쉴 틈이 없는 일정에 당신의 머리는 벌써부터 지끈거립니다.
모두가 이 결혼과 축하연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아니, 모두는 아닙니다.
KP:문간에서부터 당신을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정략결혼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늘 가라앉은 모습이던 아키토입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저택에 거둬져 함께 자라 온 둘도 없는 친구이자 누구보다도 충실한 당신의 하인입니다.
그는 전혀 기쁘지 않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노노메 아키토:......머리. 흐트러져 있다고, 토우야.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드러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는 얼굴. 곧 화장대의 의자를 빼고 네게 이쪽으로 오라는 듯이 손짓한다.) 고쳐 줄 테니까 이리 와.
아오야기 토우야:(여전히 표정은 풀리지 않은 상태구나. 처음부터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내일이면 정말로... ...그렇기 때문에 네 표정이 보다 더 좋지 않은 걸까? 시선을 맞추어 가만히 바라보다가 의자를 빼고 있던 손가락 마디 끝에 시선 한 번, 손짓하는 손끝에 시선을 한 번 두었다가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인다. 그리고 의자 위에 조심히 앉고선 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이런 거까지 아직 아키토가 해주는 걸 보면, 아직 다 자란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에도, 내일이면 정말로 식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기도 하고. 아키토가 있어서 다행이야. 언제나 고마워.
시노노메 아키토:(눈을 감은 얼굴을 거울 너머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린 뒤 눈앞에 보이는 머리카락을 부드러운 손길로 매만지기 시작한다. 옛날부터 익숙한 머릿결을 만지다 보니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은 풀리는 게 느껴졌다. 들리는 네 말에 살짝 간지러워진 낯으로 고개를 젓는다.) 따지고 보면 나는 네 녀석의 집의 하인일 뿐이니까, 고맙다고 말할 것도 없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식이라고 하니까 물어보는 거지만, 네 녀석은 이 결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사실은 하기 싫은 거 아냐? 이런, 사랑도 뭣도 없는 결혼은...... 내가 용서할 수 없다고, 토우야.
아오야기 토우야:(묘하게 감정이 연기처럼 얹어진 느낌의 손길, 그럼에도 상냥한 네 내면이 비추어지듯 흐트러진 머리를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정리하는 모습이 참으로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두 눈을 느릿하게 떠내고 시선을 위로 올려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있다가도, 금방 표정이 평소와 같이 굳은 얼굴로 돌아왔다.) 그치만, 아키토. 집 안에 하인이든, 무엇이든... 감사한 일을 받았으면 그것에 맞는 대가나 인사를 보내는 것이 당연한 거야. 그리고, 결혼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시선을 옆으로 두었다. 조금 길지만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 있는 결혼을 그려. 그건 그 사람들이 흔하게 할 수 없고,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글이나 무대에서 자주 쓰이는 것이지. 어쩌면 현실 도피로 봐도 괜찮은 이야기를 무대와 글로 풀어내는 거야. 그러니까, 감정이 없는 이 결혼이라도. 결국엔 집안엔 무언가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 아닐까 싶어. 난, 그 수단을 위해 자란 것이나 다름이 없고... 내 이후에 일도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양가측에서 압박이 들어온다면 이후에도 그러겠지. 결국은 끊임이 없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럴 수 밖에 없는 세상인걸.
시노노메 아키토:...그러니까, 네 녀석은 이딴 세상에 반항할 생각이 없다고...
...토우야. (약간은 자조하는 듯한 목소리. 짓누르듯이 흘러나오는 뒷말에는 웃음과 함께 고통이 담겨 있지만 지금은 그걸 숨길 여유가 없었다. 나는 네가 정략결혼을 통보받은 날부터 쭉 이 세상과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 반항하고 싶은 나와 달리 순종적으로 굴겠다는 네 말에 무심코 웃어버리고는 울컥하는 마음을 그대로 토해낸다.) ...네 녀석이 꼭 결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 녀석보다는 내가 낫지 않아?
내 주제에 미친 소리라고는 생각하지만 말이지. 너는... (감정이 극에 치닫다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져나가는 목소리. 종래에는 평정을 되찾아 담담해지면서도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옅은 문장을 읊조렸다.) ...만약 내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어?
아오야기 토우야:반항이라기보단, 그것이 지금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야. 책에서 봐온, 하물며 극에서 봐온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득 담긴 결과물로 결혼을 한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의 결과인걸.
(두 눈을 느릿하게 슴벅이다가 고개를 돌려서 완전히 시선과 얼굴을 마주하고 가만히 바라본다.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는 자신이라지만, 지금은 조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결코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없겠지. 어쩌면 넌 내 평생을 함께 살아왔고, 네가 죽기 전까지는 함께 살아갈지도 모르는걸. 번잡한 머릿속을 계속 뒤집는 듯한 네 말을 가만히 듣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내가 아키토를 내치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거야, 아키토가 말했듯 아키토는 우리 집 하인이고, 아키토와 함께 지낸 시간이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면 내가 최대한 막으려고 노력하겠지. ...외부의 압박만 없다면야. 결혼은, ...음. 나은 걸로 따지면 아키토가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아키토도 알고 있잖아. 도망치고 싶어도, 이미 결정이 난 것이고... 도망가더라도 언젠가 들키고 말 테니까. 아키토가 내 결혼 상대였다면 조금 달랐을까. 사무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감정을 나누며 대화와 함께 책에서 볼 법한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을 하긴 했어. ...그래도, 그러진 못하겠지. 그건 그저 상상에 불과하니까.
시노노메 아키토:(
그 말의 의미는 뭐야...... 내가 결혼 상대였다면 조금 더 감정을 나누면서 책에서 볼 법한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라니. 분명 별 의미 없이 한 말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독인 발언을 이 녀석은 하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토우야는 가끔 무자각으로 남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발언을 한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나 혼자 의미를 부여해버리는 것도 비참하다. 그러니까 정신 차려, 나. 심장을 들쑤시는 발언에 당황해버리는 것도 잠시, 그것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고 싶은 것을 애써 억누르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겨우 내뱉는다.) ...읏. 생각해준 것만으로 됐다고. 나도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것보다 아직 정리 안 끝났으니까.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네 얼굴을 거울 앞으로 되돌리고 열이 오르고 있는 제 얼굴을 필사적으로 갈무리한다. 정리 같은 건 진작에 다 끝난 거였지만, 그 상태로 의미 없이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안정을 되찾은 뒤에야 네게 닿아 있던 손을 떨어트릴 수 있었다. 옅게 주먹을 쥐고 뒤로 두 걸음 정도 물러난다.) ...이제 일어나도 돼.
아오야기 토우야:아, 미안. 정리가 다 끝난 줄 알았어. (머리카락 위로 맞닿는 손길이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에 절로 두 눈이 감겼다. 다정한 사람이라니까. 아키토는.) ...응. 고마워, 아키토. (조심히 일어나서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상체를 돌린 후에 가만히 마주 바라본다. 마주한 시선 끝에서는 옅은 웃음을 지으면서 환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파티, 시끄러워서 아키토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형식적인 것이니 이해해줘. 그리고, 즐겨줬으면 좋겠어.
시노노메 아키토:뭐... 알겠다고. 노력 정도는 해 볼 테니까. (
네가 웃으면서 말해준다면 이쪽에서도 좋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하는 게 맞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웃는 티가 났을지도 모른다. 너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KP:그렇게 둘이 대화하고 있으면 사용인들이 찾아와 연회장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립니다. 이제 연회장으로 향할 시간입니다.
아오야기 토우야:(맞닿은 시선에서 다른 음성이 들리자 마치 뭐라도 잘못한 사람마냥 놀라다가 표정을 굳히고 안정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아키토가 아니면 금방 다른 사람에게는 표정이 굳어버리는구나.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유독 너를 편하게 생각하고, 너와의 순간을 안정을 찾는 시간으로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결혼 이후에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이렇게 대화하는 것조차 그렇게 잦게 할 순 없겠지만서도.) 갈까? 아키토.
시노노메 아키토:(그 광경을 지켜보고는 어쩔 수 없이 안타까워진 시선으로 널 바라본다.) ...아아. 조심해, 토우야. (네 등을 가볍게 쓰다듬은 뒤 네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린다. 네가 걷기 시작하자 너를 따라 느릿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이 연회장으로 향하면 저택의 홀과 그 앞에 있는 거대한 정원에는 사람들이 모여 웃으며 벌써부터 당신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주위는 어디를 봐도 시끄럽기만 합니다. 당신의 곁을 당연하게 지키고 선 아키토가 유지하는 침묵만이 이 상황에서 당신에게 안기는 유일한 고요입니다.
지능 굴려주세요.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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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귀족 A:오랜만일세!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엔도 가와 결혼을 하다니, 이건 정말 경사로군!
모르는 귀족 B:아무렴! 그 집안은 예로부터 아주 유명하지 않았나.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으니 남은 건 만사형통밖에 없겠어!
(To 아오야기 토우야): 자신에게 있는 대로 아는 척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잘 나가는 것 같으니 일부러 친하게 구는 것 같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이 정보를 토대로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웃음을 지으면서 최소한의 예의를 포장하듯 고개를 숙여서 인사한다. 처음 보는 낯이지만,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우호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중립의 선을 지킬 정도로만 교류를 하면 될 테지.) 그렇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허나, 부와 명예가 중하디중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도 중한 법이지요. 그런 말씀은 꼭 제 약혼자를 부와 명예의 도구로만 보는 것 같은 말씀이라 듣기가 조금 그런 거 같습니다.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건조한 말이지만, 이렇게 말해두어야 뒷말로 부와 명예를 위해 결혼했다... 같은 말이 떠돌지 않겠지. 실은 집에서 이용당해서 떠밀린 결혼과 다를 것이 없다지만. 그래도, 겉으로 도는 소문은 없게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건조한 표정으로 가만히 둘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모르는 귀족 B:아, 흠흠...... 미안하구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결혼하는 것 같아 흥분해버렸지 뭔가?
물론 부와 명예가 아니더라도 금슬좋게 지내는 부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네. 무려 자네와 엔도 가의 영식이니!
그저 축하하고 싶었던 것뿐이니 부디 아까의 내 말이 자네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았길 바라네. 그럼...
KP:귀족 두 명이
어색하게 웃다가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당신이 작게 한숨을 쉬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듣기 굴려주세요.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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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A:그러고 보니 엔도 가에서 근래에 실종자들이 늘어났다며?
귀족 B:결혼식 날짜가 발표된 이후에 계속 그렇다더라고요. 무슨 마가 꼈는지, 이렇게 경사스러울 때에...
귀족 C: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지. 그도 그럴 게 결혼이잖아요.
KP:당신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당신을 알아본 또 다른 귀족들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엔도 가 사람 A:이게 누구야, 우리 새 가족 될 사람 아니야!
엔도 가 사람 B:만나서 정말 반갑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총명하고 영특하게 생겼군!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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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엔도 가의 사람들은 왜인지 대부분 눈동자가 흐립니다. 햇빛을 오래 보지 않았거나 잠을 자지 못한 사람들처럼 눈 밑이 거뭇하고 낯빛이 창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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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엔도 가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립니다. 왕족과도 줄이 이어져 있는 이 나라의 가장 명예로운 가문. 엔도 가가 자신의 가문보다 명성이 높은 유일한 집안이라는 것은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그 화려함에 가려져 있는 엔도 가의 묘한 부분을 떠올립니다. 결혼이 결정된 뒤 집안 차원에서 그들에 대해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엔도 가의 사람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크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엔도 가는 가문 구성원조차 전부 공개하지 않았고, 항간에는 엔도 가의 구성원 중에 미친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그렇다고 해도 내일이면 가족이 될 사람들입니다. 우선은 그들과 마주 인사하는 게 좋겠죠.
아오야기 토우야:(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보내고 시선을 마주한다. 그들의 안색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은 그들과 친하지 않든, 그들과 처음 마주하든 쉽사리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소문과 더불어 그들의 안색을 보았더라면 사라지는 사람들 때문에 집 안에 갇혀 사는 줄 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겠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가 더 부족한 사람이니 보다 더 노력해야겠지요. 식전에 준비한 파티가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부디 좋게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옅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들었고, 습관 아닌 습관처럼 옆으로 넘겨진 머리를 다시 한번 쓸어내렸다.)
KP:그렇게 당신이 엔도 가의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있으면 그들 중 한 명이 당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부릅니다.
엔도 가 사람 C:옳지. 곧 부부가 될 사람들인데 춤 한 번은 춰야 하지 않겠어?
엔도 카미코:...그렇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 님.
당신과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어요? 괜찮으시면 에스코트를 부탁드려요.
아오야기 토우야:네, 물론이지요. 바닥에 놓인 천에 발이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없게 꽉 잡아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차마 거절할 수도 없고, 보는 눈이 없더라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 차분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하얀 장갑을 꺼내 낀 다음에 오른손을 조심히 뻗어 감싸 잡고 천천히 중앙 홀까지 걸어 나갔다. 아, 정말로 싫은 일을 하는 기분이다. 이렇게까지 감정이 실릴 일이 아닌데,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기 전에 너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 탓일까, 아니면 오래전부터 이런 느낌으로 연을 이어가는 것에 불만이 있었어서 그런 건지도. 아니면, 그냥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장갑을 꺼내 끼고 미래의 배우자를 정중하게 에스코트하는 당신의 모습은 과연 귀족답습니다. 홀의 중앙으로 걸어 나간 당신은 곧 모든 이들의 주목 속에서 당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과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미끄러지듯, 물 흐르듯 부드러운 몸짓은 둘이 오랫동안 교양을 배워온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둘을, 연회에 있는 모두가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그러나 딱 한 명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미래의 배우자와 춤을 추고 있는 가운데 다른 사람을 떠올리고 맙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그러고 보니 연회장에 들어오고부터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요.
(To 아오야기 토우야): 만약 다른 귀족들 사이에서 미래의 배우자와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결혼 소식이 전해진 그날부터 웃음이 사라져버린 그는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To 아오야기 토우야): 아키토. 문득 그의 가라앉은 얼굴이 뇌리를 스쳐갑니다. 차라리 자신과 결혼하는 게 낫지 않냐느니,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곁에 있어줄 수 있냐느니. ...그가 연회장에 오기 전에 했던 말의 의미는 뭐였을까요.
아오야기 토우야:(문득, 에스코트를 하기 전부터 떠오른 네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정략혼이 정해지고 난 이후부터 무언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참을 그리 불편하게 서 있다가도, 흐트러진 내 모습을 보며 바로 알아차리고 정리해주는 네 모습도, 언제나 곁에 붙어서 챙겨주던 네 모습도. 어쩌면 자신과 결혼하자고 말한 그 말은 지금 이 상황에서 도망가게 해줄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벗어나게 해줄까? 라는 말로만 들렸지만, 실상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물론 실로는 일어날 수 없기에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서도, 그럼에도 만일 그가 이 자리에 서 있었다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무심코 해버렸을 정도로. 어쩌면 내가 도망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실은 너랑 있고 싶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춤을 이어가면서도 오로지 네 생각에 잠겨 주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평소라면 누구보다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있는 네가, 이런 날에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 멀쩡한 속을 뒤집어 두는 착각까지 들 정도로 속이 시끄러워진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어두운 표정을 지을수도, 심지어 네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현실이 가장 속을 아프게 만드네요. 한숨조차 쉬지 못하고 억지로 웃는 가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가면을 쓸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참 쓴 약을 먹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기분입니다.)
엔도 카미코:...... (그런 당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속삭입니다.)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굉장히 아끼나 봐요.
친구인지 시종인지, 우선은 시종인 것 같은데... 아까부터 저희 가문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어서 기분이 나쁘답니다, 저.
거기에 토우야 님께서는 저를 두고 다른 생각을 하시기까지. 가문의 존망이 위협받길 원하지 않는다면 제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리고 저 사람, 저희 가문을 좋지 않은 의도로 조사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예의상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저 하인만큼은 모쪼록 일이 커지기 전에 관리해 주시길.
KP:당신이 할 말을 찾기도 전에 타이밍 좋게 춤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정중하게 인사한 카미코는 곧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녀에게는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카미코가 말한 사람은 분명 아키토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키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제 뭘 하려고 하나요?
아오야기 토우야:(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표정에 티가 난다는 말을 자주 듣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티가 났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평소랑 같은 표정을 지었던 거 같은데. ...실례를 한 거 같아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아키토가 엔도 가문에 대해서 조사를 하는 것이 있었던가. 있었다면 먼저 나에게 와서 말을 했었을 거 같은데. 애초에, 지금 아키토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자리에 서서 아키토의 그림자라도 찾아보려고 고개를 돌려봅니다. 그의 눈에는 그렇게 잘 보였는데, ...내 눈에는 왜 안 보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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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그늘 속에서 엔도 가의 사람들을 적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키토를 발견합니다. 어두운 곳에 있으니 보이지 않았을 만도 합니다. 그는 정원으로 통하는 입구 옆에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묻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를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가 좋아할 만한 술을 가지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혹은 그의 속내를 알 수 있게끔.
아오야기 토우야:(...저렇게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니 그녀라면 알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가문의 사람들 중에서 눈치가 빠르다면 그들도 쉽게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을 시켜 정원으로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 하게 시키고, 정원에 술과 잔 두 잔을 놓으라고 말한 후에 아키토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여기 있었구나. 아키토. (옆으로 내려온 자신의 머리를 귀 뒤로 넘긴 후에 웃음을 지으면서 어깨 위를 살살 토닥였다.) 한참 찾았어. 잠깐 시간 괜찮을까?
시노노메 아키토:...토우야. (널 보자마자 날카롭게 굳어 있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린다.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기세로 그들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있던 것을 풀고 자신의 한쪽 골반에 손을 얹으면서 너를 향해 고개를 기울인다. 네 관심에 은근히 기대하는 낯으로 널 바라보고 있었다.) ...찾게 해서 미안하구만. 시간이라면 차고 넘치니까 허락 같은 건 구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슨 일이야?
아오야기 토우야:별일은 아니야. 다만, 아키토가 조금 표정이 굳은 것도 있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어서. 내일이면 식을 준비하느라 그것 때문에 바쁘기도 할 거 같아서, 마지막 날인 오늘. 지금이라도 대화를 했으면 좋겠어서 찾았어. 아키토가 좋아하는 술도 준비했으니까, 안의 공기가 답답하면 같이 마시러 가는 건 어때? (표정이 저렇게까지 풀리면서, 왜 저 가문 사람들에게만 유독 그런 걸까. 정말로, 아키토에게는 다른 마음이 있는 걸까? 라는 착각을 자신도 모르게 해버리게 만드는 사람이다. 넌. 그러니까, 이번엔 진짜로 물어봐야겠어. 너의 진심을, 그리고... 너의 마음을.)
시노노메 아키토:술... 그건가. (네가 나를 챙겨주는 마음에 겉으로는 순수하게 기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네가 나를 찾아준 것에 무심코 들떠버린 기분을 조금만 억제하고 생각해보면 엔도 가문을 적대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을 너였다. 네가 그런 나를 보고 술을 준비한 거라면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엔도 가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건 아닌지, 그것에 대해서 캐묻거나 주의를 줄 요량인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무심코 가라앉으려는 기분을 억지로 끌어올린다. 곧 네 제안에 흔쾌히 응하는 모습으로 널 바라봤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일이잖아. 그럼 나가자고, 토우야. ...네가 원하는 만큼 어울려 주겠어.
그렇게 둘이 정원으로 나오면 시끌벅적하던 파티 홀 내부와는 상반되는 고요가 찾아옵니다. 아키토의 분위기는 조금 전에 토우야가 발견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온화해진 것 같습니다. 분명 시끄러운 연회장의 분위기가 싫었던 거겠죠.
시간은 밤 9시고 달은 보름달입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별은 쏟아질 듯 무수히 많아 보입니다.
홀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바뀝니다. 그 순간, 아키토가 달빛을 등지고 고요한 눈길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시노노메 아키토:...그래서, 뭐가 말하고 싶은 거야.
아오야기 토우야:별 건 아니고. ...아키토랑 이렇게 마음 놓고 말할 시간이 없었던 거 같아서. 항상 바쁘면 바빴지, 예전이랑 다르게 이렇게 마음 놓고 대화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조심히 달 쪽으로 시선을 옮겨 바라보고, 맑은 하늘을 가만히 바라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달과 별이 밝게 빛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실은, 아키토. ...아까, 카미코 씨랑 춤을 추고 있었는데. 아키토가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다고 그러더라. 친구인지, 하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렇게 유심히 보고 있다고 그러셨거든. 아키토라면 어떤 마음에서 바라본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쁜 마음은 아닐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아키토는 소중한 내 친우나 다름이 없으니까.
...하늘이 맑아. 아키토. 마치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신호일지도 몰라. 안 그래?
시노노메 아키토:......네 녀석은 너무 착해. 바보같이...... (
네 말이 진행됨에 따라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무심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지 못 한다고 해도 그 어딘가의 내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듯한 네 화법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보내주는 네 믿음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하늘을 보고 있는 널 지켜보고 있기도 잠시, 마지막으로 들리는 말에는 심란함을 느끼면서 생각에 잠기려는 차에 정원 테이블에 가지런히 준비된 술과 두 개의 잔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토우야가 술을 준비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셔야겠어. 네 녀석은 연회에서 다른 녀석들이랑 대화해야 할 텐데, 나랑 마셔도 괜찮아?
아오야기 토우야:그런가. 그래도 이런 모습은 아키토가 아니면 남들은 모르는 모습이야. 남들은 전부 영민하고, 옳고 곧은 모습만을 알고 있으니까. 이 모습을 아는 건 아키토가 전부야. 정말로. ...가족도 모르는 모습이니까. (코르크 마개를 빼낸 후에 빈 잔에다가 반씩 채우고 한 잔은 자신의 앞에, 다른 한 잔은 네 앞에다가 내려놓았다. 이런 술자리를 가지는 것도 내일 이후에는 어려우려나. 여러 생각과 마음이 교차하면서 어딘가 서늘한 표정이었다가, 끝내 표정을 고치고 잔을 맞댄 후에 웃음을 지었다.) 응, 괜찮아. 어차피 필요한 사람들에겐 전부 인사를 끝내고 온 참이고... 애초에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키토. 오늘은, 마지막 날이잖아. 식을 올리기 전에, 아키토랑 이렇게 한 잔 마시고 싶었는걸.
시노노메 아키토:(그 말에 얇게 수긍하고는 네가 준비해 준 잔을 들어 네 것과 부딪친 뒤 가공된 유리 끝을 제 입술에 조용히 붙인다. 잔에 코가 가까워지자 알코올의 냄새가 훅 끼치면서 조금은 얼얼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되지도 않는 머리를 쓰거나 움직여대기 바빴으니까 술은 오랜만이다. 여유가 없었구나.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잔을 들이키기 시작하자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무언가를 마시는 중이니 침묵은 당연했다. 그 와중에 나긋하게 주절거리는 네 목소리가 좋았다. 하지만, 네 말의 특정 부분에서 무심코 어두워지고 마는 내 표정은 당연하지도, 좋지도 못했을 것이다. 네 입에서 식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부드럽게 들이키던 잔을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르게 비워버린다.) ......하. (격식 같은 건 없이 한 번에 비워진 잔의 윗부분이 아래를 보게 한 채 대충 붙잡고, 달빛에 반사되는 유리의 표면을 내려다보면서 약간은 거칠어진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그럼 식 이야기는 그만둬. 듣고 싶지 않으니까.
네 녀석이 나한테만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알고 있어. 나도 이렇게 잘해주는 건 너밖에 없고. ...그렇지만 단순히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왔으니까 그렇게 구는 거잖아, 너는.
...따지고 보면 나에 대한 걸 그렇게 특별하게 치켜세워줄 필요도 없어. 나는... 네 녀석이 하기 싫은 것들로부터 정당한 방법으로 널 지키지도 못하는 멍청한 녀석일 뿐이야.
아오야기 토우야:(잔을 조심히 들고 흔들어서 잔의 내용물이 섞이게 했다. 마치 내 감정을 잘 섞어서 말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해도 다른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지. 어딘가 어두운 표정이 웃도는 것도, 지금 우울하게 내려앉은 이 분위기도, 달빛과 어우러져서 보다 서글픈 느낌이 드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런 너를 달랠 수도 없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너에게 이렇게 말을 전하는 것이 전부니까.) 미안, 싫은 줄 몰랐어.
(긴 침묵이 이어진다. 잔에 담긴 위스키는 속 안으로 넘길 수 없었다. 너의 본심을 듣기 위해서 너에게 준 것이었으나, 자신이 취해버리면 너의 본심마저 기억하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질 것이 분명할 테니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키토가 이 식에 대해서 그렇게 싫다고 표정으로부터 내보인 이유는,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릴 때부터 서로가 같이 지내왔고,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렇기에 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었지. 안다. 이제는 알고 있다. 너의 친절함이 어디로 향한 행위인지를.)
...아키토는, 내가 좋은 거야? 그러니까. 내가 심심하면 아키토에게 늘어놓는 소설이나, 극 중의 이야기에서 볼 법한 사랑을 넌 나에게서 느끼고 있는 거야? (시선의 끝이 잔을 향해갔다. 이 섞이는 술처럼 내 감정도 말끝에 섞어서 전하고 싶지만, 글쎄. 어려운 일이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당장 내일이면 식을 올리는 자신인데,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네가 하는 행위는 누가 봐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나 다를 것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시노노메 아키토:......갑자기 뭘 말하고 있는 거야, 너...... (빈 잔에 술을 채우려 손을 뻗고 있던 타이밍에 이어진 네 말에 술기운이 올라왔어도 도로 가라앉았을 것 같은 정도의 놀란 얼굴로 굳어버린 채 너를 바라본다. 술도 마시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잔만 내려다보고 있는 널 보자마자 내가 널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 실수다. 이번의 일은 특별하니까 생각한 것보다 동요해서, 이 녀석에게는 보다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약간 풀어진 것 정도로 이렇게 쉽게 눈치채버릴 정도였나? 어쨌든 간에 오랫동안 텁텁하게 숨겨왔던 사랑이 들켜버리자 어쩔 수 없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안 돼.) ......나는......
(이를 악물고 채우지 못한 잔을 테이블에 둔다.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아야 했다.) ...결혼할 예정인 너한테는 말해줄 수 없어. 미안하지만 먼저 들어갈 테니까, 넌 연회장으로 돌아가.
이윽고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아키토가 당신을 지나쳐 어딘가로 사라지고 맙니다. 어째서인지 그 뒷모습이 묘한 기분을 안깁니다.
KP:연회의 주인공인 당신은 가족의 허락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직도 한참 분위기가 올라 있는 연회장. 지금 당신이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그곳뿐입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아키토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상했겠지. 잔에 남은 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기분으로는 어떤 행위를 하든 정말 쓰디쓴 일밖에 남지 않았겠지만서도. 잔을 흔들다가, 정원 밖에 전부 비워낸 다음에 한숨을 내뱉었다. 마치 네 앞에서 보인 감정을 전부 담아서 흘러내리는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네 생각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습게도 오래 봐온 시선이 결국은 우정의 의미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아닌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비워내야 한다. 비워내지 않으면, 어제처럼 눈치가 좋은 사람에게 걸릴 수도 있고, 뒷말이 오갈 수도 있다. 그래. 이렇게 밖에서 오래 버티는 것도 뒷말이 쉬이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돌아가는 것이 맞겠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쓴웃음과 한탄이 섞인 숨을 내뱉고 표정을 굳힌 다음에 다시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심란함을 안은 파티의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눈을 뜨면 어느덧 새로운 아침이 밝았습니다
. 당신이 일어나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이제 곧 결혼식장에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향유로 씻기고 몸단장을 해주는 사용인들 사이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몸단장을 마친 뒤 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주변을 둘러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의 행적에 불안을 느끼기도 잠시. ...그런데 이상합니다. 도착한 식장, 그러니까 엔도 가의 대저택의 분위기가 입구에서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묘하게 풍기는 기묘한 서늘함. 어디선가 나는 미미하게 시큼한 냄새에 기시감이 듭니다. 이상할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것도 같습니다.
긴장한 당신이 저택 안으로 발을 들이면 홀이 소란스러움을 깨닫습니다. 지나가는 사용인들이 경찰이 왔다며 연신 속삭입니다.
당신이 유난히 소란스러운 부근을 보면 엔도 가의 부인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습니다. 부인의 남편 또한 넋이 나간 기색입니다.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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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당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제 마주한 당신의 예비 배우자, 엔도 카미코의 시체입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곱게 자란 도련님답게 비위가 약한 당신은 시체의 모습을 발견하고 구역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은 시체를 발견한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뒤 주변을 둘러보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너무나 갑작스럽게 수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마치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이 상황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최대한 무례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린 후에 헛구역질을 참아내다가, 표정을 굳히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봅니다. 분명 오늘은 내 기준에선 어떨지 몰라도 행복하게 꾸며진 날이 아니던가요. 이런 날까지 비극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던가요. 불편하고 억눌린 속을 천천히 달래면서 고개를 젓습니다.)
KP:살인사건의 현장은 1층의 응접실입니다. 중앙의 카펫 위에는 엔도 카미코의 시체가 있고, 당신은 그 앞에 서 있습니다.
당신은 카미코의 시체, 카펫, 열려있는 창문, 장식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이런 상황을 흔히 겪은 것도 아닌 자신에게는, 시체를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무언가 행동하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정말로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둘러봅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래도 가장 먼저 시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카미코의 시체 앞에 서서 우선 두 눈을 감고 짧게 묵례를 이어갑니다. 어제 그렇게 자신에게 당차게 이야기했던 사람인데, 분명 살해당하기 전에 저항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저 내 모든 생각이 단단한 착각과 회피 속에 이루어진 거 같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카미코의 시체는 총살을 당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상태입니다. 눈도 채 감지 못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시체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구역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의 손에는 무언가가 쥐어져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그것을 빼내기 위해서는 은밀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밀행동 굴려주세요.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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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카미코가 쥐고 있는 무언가를 은밀하게 빼내는 데 성공합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확인한 그것은 찢어진 쪽지입니다. 쪽지를 펼쳐보면 거미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카미코의 시체에는 더 조사점이 없습니다. 다른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거미? ...무슨 힌트를 주고 싶었던 거지? 거미와 관련된 조직이 있었나, 아니면 이걸 쓰는 사람이 카미코 씨를 불러낸 것인가. 뜯겨져나간 조각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하는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뿐이겠지. 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서 눈을 가려준다. 부디 편히 쉬시기를. 두 눈을 감고 짧게 한 번 더 묵례를 하고 난 후에
카펫 위로 시선을 옮겼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카펫은 핏자국으로 너덜너덜합니다. 그 위에는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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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카펫과 바닥의 틈새에 떨어져 있는 탄피를 발견합니다. 매그넘 계열. 리볼버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분명 이것이 피해자를 죽인 무기인 것 같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카펫에는 더 조사점이 없습니다. 다른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혹시 모르니까 주워서 보관하고 싶은데. 오해를 부르기 쉬울 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경찰이 확인하는 것이 더 맞는 행동이겠지. 함부로 뛰어들었다간 범인으로 몰리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더 신중해야 하고... 숨을 삼킬 때마다 진득하게 눌어붙은 공기의 향이 맡아지는 기분이다. 오히려 숨을 참고 싶을 정도까지 와버려서,
열려있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서 밖의 공기를 삼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열려있는 창문 근처에는 신발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성인 남성 평균보다 살짝 큰 신발 사이즈. ...어쩐지 익숙한 크기입니다. 자국의 모양도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왜.
(To 아오야기 토우야): 편할 때 다른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어디서 본 거 같은, 발... 자국. 두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지금 단언하는 것은 맞지 않아. 억지로 끼워 맞추기식 논리는 통하지 않으니까.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신체 안으로 삼키고, 덥고 습하게 눌러앉은 공기를 입 밖으로 내뱉는다. 외면하고 싶어도, 지금 상황은 그럴 수 없지 않나. 그렇지만... 그래도. 미간 위에 손을 얹고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아니겠지, 아니어야 해. 제발.)
(어제 파티를 준비할 때보다 더 복잡해진 머릿속, 그리고 기절하듯이 잠들어서 새롭게 밝은 아침마저 지금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데, 감각은 현실이 맞아서 도망칠 수조차 없다는 것이 머릿속을 보다 무겁게 만들었다. 더 이상 창가 쪽에 서 있는 것은 좋지 않겠지. 뭐라도, 그러니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좀 찾아보는 것이 맞겠지. 발걸음을 옮겨 장식장 앞으로 향한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바라본 장식장은 한쪽 문이 미미하게 열린 채입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은 엔도 가의 가족 사진이 모여 있는 액자입니다만... 왜인지 유독 큰 액자 안의 사진만이 빠져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남은 조사점이 없습니다. 그 순간 경찰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경찰:물어볼 것이 있습니다만, 잠시 괜찮으십니까?
시노노메 아키토라는 자가 아오야기 님의 직속 고용인인데 오늘 하루종일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 사람이 아오야기 님의 결혼식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하는데, 혹시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그 사람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물론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일어나자마자 그의 행방을 물어볼 틈도 없이 결혼식장으로 왔는걸요.
아오야기 토우야:...아, 네. 우선, 시노노메 아키토는 제 직속 고용인이 맞습니다, 만... 오늘 하루는 본 적이 없네요. 오늘은 저도 정신없이 결혼식을 위해서 이곳으로 왔으니까요. 제가 아랫사람을 잘 본다고 해도, 아랫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르지 않다 보니,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제 기분이 상한 이후로 내 곁에는 오기도 싫다, 이런 뜻인 걸까. 함부로 묻는 것이 아니었나. ...괜히 기분만 상하게 한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혹시, ...용건이라도 있으신가요?
경찰:그게... 그 고용인의 알리바이가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봐야 할 것 같아 저희 측에서 경찰 몇 명을 아오야기 님의 저택으로 보내고자 합니다만, 양해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오야기 토우야:(저녁 이후로 행방이 묘연하긴 했다. 하지만 아키토는 분명 들어간다고 했었고, 나에게 거짓을 고할 정도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제로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 ...모르겠다. 정말로 날 이 식에서 빼 오기 위해서 그랬다면, 아키토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든다. 이게, 다 창가에서 본 발자국 탓이다. 그냥 시끄러운 곳이 싫어 그곳에서 머뭇거리다가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억지로 그를 의심하는 거 같은 자신이 이젠 싫증 난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도 이랬을까.) ...예, 괜찮습니다. 사건이 사건이니까요. 부디 카미코 씨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KP:경찰의 동행을 승낙한 당신이 물거품이 된 결혼식장에 이 이상 머무를 이유는 없습니다.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이 바닥으로 추락한 것에 모든 이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당신은 착잡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를 시종에게 지시합니다.
귀가하는 마차가 준비되는 가운데 엔도 카미코의 부모가 망연히 앉아있다가 당신을 응시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들에게는 무언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아,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고 카미코의 부모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서 시선을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닿게 하고 고개를 숙였다.) ... 따님 일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범인을 찾을 테니. 두 분도 들어가셔서 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카미코 씨도 진상을 밝히기 전에 두 분이 이렇게까지 지쳐 쓰러지기 전의 모습을 하고 계신 것을 보신다면 마음 아파하실 것이 분명하니까요. 이후의 일은 제가 잘 맡도록 하겠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엔도 카미코의 부모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태도가 어쩐지 기형적으로 느껴집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낍니다. ...답을 듣지 못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눈치껏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예는 갖췄으니까요.
아오야기 토우야:(이게, 아닌가? 예의상으로는 맞게 잘 대답한 거 같은데. 아니면,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건가? 조심히 일어나서 예의를 지켜 인사한 후에 뒤로 돌아 천천히 마차 앞까지 걸어 나갔다. 일이 복잡하게 된 것도, 그리고 지금까지 행방을 알 수 없는 너도, 모든 행동이 전부 어지럽고 알 수 없었다. 마치 거짓된 소설 속 안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느낌이었다.)
KP:당신이 엔도 가의 저택을 나서면 어디선가 강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선이 느껴지는 장소는 엔도 가 저택의 한구석에 있는 풀숲입니다.
관찰 굴려주세요.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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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하얗고 벌레처럼 생긴 무언가가 당신을 응시하다 사라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찜찜하기 그지없는 기분을 느끼면서 저택으로 돌아갑니다.
돌아온 집안은 그야말로 난리입니다.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죽었으니까요. 그것도 당신의 결혼 대상이.
당신은 어떤가요? 악몽 같던 그곳을 벗어나면서 진정이 좀 됐나요? 당신이 괜찮든 괜찮지 않든, 지금 이 상황에서 아키토가 미심쩍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방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면 창밖에서 아키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냐며 소란을 떠는 하인들과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심부름을 다녀왔노라 답하는 아키토의 모습이 창가로 향한 당신의 시야에 잡힙니다.
그러다 문득 창문 너머로 그와 눈이 마주친 듯합니다. 당신을 발견한 아키토는 당신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윽고 희미하면서도 이질적인 미소를 띱니다.
그러는 것도 잠시, 현관에 있던 경찰들이 안전을 명목으로 그의 주변을 가로막자 아키토의 낯빛이 그들을 향해 날카로워집니다. ...여기서는 저쪽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현관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나를 향해서 웃음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 풀려서? 아니면, 단순히 나에게, ...아니다.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아, 닌데... 주변에 둘러싸인 경찰을 바라보고 급하게 현관 앞으로 뛰쳐나갔다. 저 사람들이 아키토에게 무어라고 할지는 이미 예상이 간다. 당연하다. 왜냐면, ...이미 정황상으로는 아키토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나 또한 그렇게 믿기 싫었으나, 창문에서 본 발자국, 그리고...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우선, 우선... 지금은 아키토에게 가야 해.)
KP:당신이 현관으로 나가면 경찰에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아키토의 모습이 보입니다. 집사장의 지시로 한 달 전에 예약한 물건을 수령하기 위해 나갔고, 그가 갔다고 말한 위치는 엔도 가의 저택과는 정반대에 있는 곳입니다.
물건을 산 영수증과 구매한 상인까지 증인으로 내세우자 의심스러운 낯을 하고 있던 경찰 몇이 결국 수긍하곤 철수합니다. ...경찰들을 돌려보낸 아키토는 어째서인지 당신이 익히 알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계속 탐탁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그가 결혼이 무산된 이후 묘하게 편안해진 분위기로 돌아오다니요. 기시감이 들어야 하는 부분인지, 안도해야 하는 부분인지 당신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시노노메 아키토:(한숨을 쉬고 들어오는 길목에 현관으로 나와 있는 너와 눈을 마주치고는 창밖에서 마주쳤던 때처럼 무표정하게 시선을 마주한다. 피곤한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모를 나른하게 처져 있으면서도 어딘가 결의가 번들거리는 시선. 사랑에 미친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어 약간은 불안한 듯한 눈길. 곧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 제 구두 코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이 분위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게 맞는 건지, 내가 지금 무슨 기분인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약한 혼란을 뒤로한 채, 네 눈앞에 도착한 뒤에는 다정하게 말을 건네기로 했다. 은은하게 입꼬리를 올린 제 얼굴이 조금은 어색하게 보일지라도.) ...괜찮아? 토우야.
네 녀석의 결혼 상대, 죽었다며. 총에 맞아서.
아오야기 토우야:(주변에 사람이 있는 것을 의식하고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응시한다. 풀어진 표정, 확실히 식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 이젠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키토는, 그래. 아키토는... 정말로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른한 눈매를 계속 바라보다가 들려오는 말에 깜짝 놀라서 두 눈을 끔벅였다.) ...응. 아키토는 현장에 있던 것도 아닌데, 잘 알고 있네. 갑작스럽게 당하신 거 같아. 아무런 예고 없이. 그래서 그런지, 조금 쉬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힘겹네. 할 말이 있으니까, 짐 내려놓고 내 방으로 올 수 있을까? 아키토. (강요가 아닌, 권유하는 말투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이 자리에서 편하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이 내가 힘들다는 모습을 각인시켜야 하고, 시선 또한 신경 써야 한다. 그러면서 네게 이 말을 꺼내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최대한 이성적이고, 겉으로는 약혼자를 잃어 아픈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 그렇기에, 너와 하는 대화는 더더욱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어가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결과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시노노메 아키토:(배우자를 잃어 힘겹다고 말하는 네 모습이 필히 계산된 것임을 눈치챈다. 시종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오직 나만이 아는 사실을 깨닫고 희열을 느꼈는지, 아니면 화가 났는지. 약혼자를 잃은 것에 슬퍼하는 네 모습을 보고
그게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무심코 싫은 기분이 되는 자신을 깨닫는다. 조절이 되지 않는 그것에 눈을 가늘게 하면서 네 모습이 단순한 연기라고 스스로 되뇌이고,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것을 애써 가라앉힌 뒤 너를 위해 마주 연기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딱히 화내서 할 말도 없는데 내가 이래서 어쩌자는 거야. 조금은 씁쓸해지는 기분을 뒤로하고 네가 걱정스럽다는 듯 선하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낸다.) ...아아. 정리만 하고 금방 찾아갈 테니까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몰려오는 피곤을 느낀다. 최소한만 반응한 뒤 네 어깨를 토닥이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오야기 토우야:(이제는 아키토의 표정만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도 않는다. 원래도 그랬지만, 오늘같이 머리가 복잡한 날에는 더더욱. 은은하게 서늘해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가 화가 난 이유가 약혼자가 두 눈을 감아 외관으로라도 행복한 결혼식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인지. 차마 감조차 잡히지 않아 두 눈을 감고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깨 위에 닿은 손길이 싫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실이 아닌 네 마음을 감추기 위해 네가 거짓을 고한 것이라면, 나는 너를 향해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자신의 방까지 작은 보폭으로 걸어서 발을 옮긴다. 난, 왜. 너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걸까.)
시노노메 아키토:......하아......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짐가방을 내려놓고 한숨을 쉰다. 침대에 무너지려는 몸을 겨우 일으켜 외출복을 갈아입고 옷매무새를 다듬자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가감 없이 지친 기색을 하고 있었다. ...그 녀석, 오늘은 힘들었을 테니까 여러모로 불안정한 상태겠지. 안심시켜 주고 싶다고는 생각하지만 나도 힘드니까 그럴 여력도 없고, 무엇보다 지금은 그에게 솔직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단 하나도 없다. 그에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스민다. 토우야와 지내면서 이렇게까지 대화 소재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던가. 그럼에도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으므로 고뇌를 안은 채 방을 벗어나 토우야의 방으로 향했다. 목울대를 긴장시켜 울리면서 네 방문을 천천히 두드린다.) ...토우야. 나야.
아오야기 토우야:(방 안에 놓인 책들을 가만히 손끝으로만 문지른다. 아키토를 부르긴 했지만, 아키토에게 내가 무슨 할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은 많다. 하지만 내가 이 말을 내뱉는 것으로 인해 네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건 그걸로 다른 문제다. 아니라면 당연히 네 편이 되어 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네 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사유를 물으면 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거짓말을 하진 않을까? 도망을 치진 않을까? 어느 쪽이든 끝마무리가 어설퍼진다. 아키토를 잃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겉으로만 어울리던 약혼자를 죽인 사람이 내 오래된 친우이자 너라면, 나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답답한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그저 책을 펴지도 못하고, 그 위에 덮인 하드커버만 문지를 뿐이었다. 전부 다 말하고 싶은데, 전부를 말할 수 없어서. 속이 비틀린다. 아키토, 난 어쩌면 좋아.)
(심란한 생각을 품 안에 안고 끙끙 앓던 차에, 네 목소리가 들린다. 숨을 천천히 마시고 내뱉는다. 이는 긴장할 때면 자주 하는 습관이다. 그래, 악습관이자 잘 아는 사람이 본다면 티가 날 수 있는 그런 모습. 오늘의 대화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래,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줬으면 해. 내가 너에 대한 판단을 오판하지 않고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게.) 응, 들어와. 아키토.
시노노메 아키토:(허락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위험해, 진짜로 할 말이 없어...... 문을 닫은 뒤 묘하게 찾아온 침묵에 머리카락을 긁다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연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쉬는 게 우선이지 않아? 아까는 살인 사건 때문에 힘들다고 했잖아, 너.
아오야기 토우야:일단 거기 앉아. (곧은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책으로 다시 시선을 내린다. 정말 내가 무얼 묻고 싶은 건지 넌 하나도 모르는 거야?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탁자 위를 툭, 툭... 치다가 두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느리게 뜬다. 의자에서 일어나서 시선을 마주하기 편하게 탁자 주변에 있는 의자를 빼고 앉은 뒤에 가만히 바라본다.) ...힘들긴 하지만, 그 전에. 나에게 할 말 없어? 아키토.
시노노메 아키토:......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듯 제 머리를 헤집으면서 네가 말한 자리에 주저앉는다. 오늘은 유독 표정 관리가 안 된다. ...그야 오늘은 너무 오랫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까. 이 이상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피곤해서 그런 것이다. 지친 상태가 섞여 구겨진 표정을 무마하는 것은 포기한 채, 네가 탁자를 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손에 깍지를 끼고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어쩔 건데. 나는 네가 하는 질문의 의도조차 모르겠다고, 토우야.
아오야기 토우야:(정말로 네가 나에게 할 말은 없구나. 나에게는 말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습관적으로 숨을 삼키고, 습관적으로 숨을 내뱉었다.) ...카미코 씨가 숨을 거둔 이유를 정확하게 알려면, 그녀의 시체를 봤어야 했는데, 내 주변에서 봤던 사람은 내 기억상으로는 부모님과 나, 그리고 경찰밖에 없었어. 네가 조금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네 발자국이랑 비슷한 발 모양도 봤고, 바닥에 남은 보폭은 너와 비슷한 보폭이었어. 아키토, 난 널 의심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비록 카미코 씨가 아키토가 엔도 가에 대해서 안 좋은 부분을 밟고 있다고 말을 했어도, 난 널 믿고 싶어. 넌 내 모든 것을 아는 나의 친우이자 내 가족이나 다름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키토... 사실대로 말해줘. 부탁이야.
시노노메 아키토:(자신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면서 결국에는 의심하고 있는 네게 치미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미간을 있는 대로 찡그린다. 고개를 들어 사나운 눈으로 널 바라보면서 위협적인 목소리를 억눌러 내뱉는다.) ...말하면, 뭐가 돌아와.
(연회장에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네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 말을 쏟아낼수록 그저 날카롭게 굳어 있던 얼굴에서 비틀린 웃음이 드러나는 것을 느끼지만 억제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화가 난 얼굴. 종래에는 윽박을 지르는 것에 가까웠다.) 날 믿는다고 했으면서 왜 지금은 믿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건데. 전부 말해주지 않으면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정도로 얄팍한 거였냐고, 네가 나한테 가지고 있던 믿음은?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런 녀석한테 나에 대한 걸 말해봤자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나에 대한 걸 알려준다고 해도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니까 진심으로 불안한 거라고, 이쪽은!
아오야기 토우야:아, 아니... 아키토,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네게, 네게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라. (언성이 높아지자 마주하던 시선의 끝을 흐렸다. 정말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주먹을 꾹 말아쥐고 난 후에 두 눈을 꾹 감았다.) 미안, 미안해.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아키토를 믿고 싶어서 그래. 사건의 모든 것이 전부 아키토를 향해 있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아키토를 믿고 싶었어. 그러니까, 아키토가 말할 수 있으면 전부 말해줘. (두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깨물다가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내가 이렇게까지 무너진 적이 있던가, 그런 적이 없던 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내가 몰려야지, 네가 이해를 할까.) 아키토, 네가 거짓이 아니라, 사실만 말한다면. 그렇다면 난 널 믿을 거야. 네가 카미코 씨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네가 죽이지 않았다고 덮어줄 의향도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키토. 제발.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줘.
시노노메 아키토:(네 표정을 눈에 담은 순간 깊이 침음하고 만다. 고뇌에 빠져 괴롭게 짓이겨지는 얼굴과 목소리.) ......젠장......
(네 얼굴을 볼 수 없어 괴로운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한 채 정말 오랫동안 머리를 붙잡고 있다가, 이대로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요해졌을 때에 살짝 약해진 목소리를 조금씩 울리기 시작한다. 말해도 되는지, 수습은 어떻게 할지, 그런 건 판단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그런 얼굴을 보면 가슴이 따가워져서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과 네 울 것 같은 얼굴에 휘말려 결국에는 네가 원하는 답을 내놓고 만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그러니까... 필요한 살인을 했을 뿐이야.
나는 그 가문의 녀석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버릴 거야. ...이제 만족하는 거냐고, 토우야...
아오야기 토우야:그럼, 아키토가 죽인 게 맞단 소리구나. ...왜? 아니, 왜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키토가 생각했을 때, 그들이 가진 영향력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었어? (눈가에 고인 눈물이 뚝, 뚝 떨어져 내렸다. 사실대로 말했으니까, 네가 걸리지 않으려면 멀리 보내는 것이 맞을 테지. 그렇지만, 네가 내 곁에 없는 삶이라는 것이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 아닌가. 넌, 언제나 네 곁에 있었고, 난 언제나 네가 옆에서 있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무리 내 감정을 죽이는 일이더라도, 네가 있었기에 여태 버틸 수 있었는데. 그런 너를... 내가 어떻게.) ... 아키토, 그럼. ...어제 듣지 못한 것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이젠, 결혼을 할 수도 없게 됐잖아. 들려줘.
시노노메 아키토:(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머리가 아득해진다. 하지만 괜찮다. ...아니, 내일이 되면 전부 돌아갈 테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솔직히 토우야의 우는 얼굴이 주는 충격이 너무 거세서 지금 당장은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쓸모없어. 아무리 현실적으로 사고하면 뭐해.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 울고 있는데. 변명의 여지 없이 내가 울린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의 이유가 얼마나 타당하든지 간에 그런 건 상관없이 어쨌든 너를 슬프게 만든 것이다, 내가. ...분명 오랜 친구가 살인자가 되어버려서 절망한 거겠지.) ......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못한 채 괴로운 눈을 가늘게 하면서 네게 가까이 다가간다. 네 눈물을 닦아내면서 애원하듯이 속삭인다. 온화하고 애처로운 숨결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부탁이니까 울지 마, 토우야...
(이제 와서 네가 원하는 대로 말한 것을 후회해봤자 이 이상은 네 질문을 회피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다시 마음의 문을 닫으면 너는 더욱 상처받을 테니까. 나는 정말로 너한테 약하구나.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네 질문에 순순히 입을 연다.) ...그 가문의 녀석들이 모두 정상이 아니니까. 그 녀석들은 네 녀석을 이상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어. 그러니까 전부 죽여야 해.
나는 이미 이전부터 그 가문의 녀석들을 죽여왔어. ......이번에는 거물을 죽여야 하니까, 나는 내일 그 녀석들을 면전에서 죽이고 감옥으로 들어갈 생각이야.
염치없지만 그때 네 녀석이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나를 도와준다고 약속해. 그럼 그 뒤의 질문에도 대답할 테니까.
아오야기 토우야:(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내리다가 시선을 마주했다. 살인자가 됐다는 사실이, 네가 결국엔 나로 인해서 지울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좁아진 거리감과 마주하는 시선의 끝이 미묘하다. 네가, 네가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 이상 너를 말리는 것은 네 다짐을 무너지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이 아니지 않을까, 싶어져서. 두 눈을 꾹 감고 끝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비벼 닦아낸 다음에 바라보았다.) ...속에 있는 말을 꺼내자면, 난 아키토가 그자들을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인다고 해서, 그 가문이 달라질까. 그 가문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그 가문이 문제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키토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라고 내가 말해도, 아키토는 분명 하러 나서겠지. 알아, 이젠... 이젠 아키토가 어떤 결정을 할지 곁에서 오래 봐온 나라면 알 수 있어. ...아키토가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이용해. 그 패에 내가 포함이 된다면, 날 이용해도 좋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해줄 테니. 원하는 걸, ...아키토가 바라는 걸 했으면 좋겠어. (눈가에 눈물은 고이지 않았지만, 떨리는 말의 음성을 들어보면 모든 눈물이 말에 섞여버린 듯하다. 이것이, 정말로. 네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래도... 해줄 수 있다면 네게 전부 해주고 싶어.)
시노노메 아키토:무리해서 나한테 다 해준다고 하지 말라고, 바보......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단순히, 그때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야. 거창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더러운 욕망에 대한 것이다. 부탁의 내용을 말해주면 네가 화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이상은 말할 수 없다. 아직은.) ...넌 내 패가 아니야. 누구보다도 널 위하는 내가 왜 네 녀석을 그런 식으로 취급할 거라고 생각해.
(이제 이쪽에서 약속한 걸 말할 차례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입술을 꽉 깨문다. 눈물을 멈춘 네 눈가가 애틋하게 붉어진 것이 보인다. 그렇게 떨리는 눈으로도 결국 결연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네가 너무나도 눈부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키스하고 싶어. 위로하는 건지 황홀한 건지 모를 손길로 네 뺨을 매만지다가, 살짝 흐트러진 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면서 갈증이 이는 듯한 제 입술을 달싹인다. 이윽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한다. 희망을 바란다기보단 숨기는 걸 포기한 듯 토로하는 음성으로.) ......좋아해, 토우야. ...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나는 네가 소설 속에서나 접해봤을 사랑을 네게 느끼고 있어.
얼굴도 모르는 엔도 가문의 다른 녀석들을 죽이는 건 지칠 뿐이었어. 그게 반복되니까 가끔은 미칠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하지만...... 처음으로 네 녀석의 결혼 상대를 죽이고 나서, 나는 오늘 네 녀석의 벽을 깨버렸다는 생각에 기쁨을 느껴버리고 말았어.
......이런 짓을 반복하다 보니까 정말로 미쳐버린 걸지도 몰라...... (마지막에는 자조 어린 목소리였다.) ...이런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거, 역시 싫겠지.
아오야기 토우야:(네 말 하나에, 과거형으로 덧칠된 말들 사이에 현재형으로 남아버린 말들을 속으로 곱씹으며 생각했다. 내가 느끼고 있던 너의 감정들이, 내가 짐작한 모든 것들이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맞추는 것처럼 하나씩 맞추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네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의 모든 감정을 내려놓는 느낌이 들어 불편한 속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꽉 막힌 공간에 갇혀서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을 받다가도, 네 말 한마디에 숨을 쉴 공간이 만들어지는 기분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구나. ...아키토는, 내가 단순히 책에서 본 내용을 말할 때마다 내가 밉진 않았어? 네 마음을 몰라주는, 내가 밉진 않았어? 차라리 미워하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그래서 죽어라 미워해서 그렇게까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을 하지 말지. 네가 행복해지는 삶을 위해 나를 포기하지. 왜 그랬어.
아키토, 아키토. ...정말 사실대로 말하자면, 춤을 춘 그날. 고작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그날. 그날에도 카미코 씨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네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었어. 춤을 추는 과정에서도 네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어. 살면서, 그렇게까지 표정에서 드러난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단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비춰진 느낌이라. 정말로 당황했는데, 오늘... 모든 상황이 아키토를 향해 가리키고 있었음에도, 난 믿고 싶지 않았어. 아키토가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럴 리가 없다면서 부정까지 해왔는걸. 네가 부디 옳은 길을 걸어서 내 곁에 계속 있을 거라고, 부디 그래 줬으면 한다고. 그런 생각을 오는 내내 마차 안에서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면서 바라고 있었어. ...결국, 아키토가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밖에 남지 않았어. 아키토, ...아키토.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네 모습을 바라보고, 속이 이렇게 아프고, 아련하다면... 그건 사랑의 감정일까? 책이나 극에서 볼 법한, 그런 사랑의 감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 ...난, 이제 잘 모르겠어. 그래도 네가 더이상 잘못된 길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가득할 뿐이야. 내 곁에 남아줬으면 하는 욕심뿐인데, 아키토는... ... 그러지 않겠지. 이미 다짐을 끝냈잖아.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거밖에 없는 거 같아.
(맞닿은 시선을 뒤로 하고, 손만 뻗어서 널 끌어안은 다음에 등을 쓸어내렸다. 해줄 수 있는 것이, 그리고 네게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것이 이런 거밖에 없어서. 어깨 위에 얼굴을 묻어버리고 끌어안은 상태로 가만히 숨을 죽였다.) 싫지 않아. 싫지 않지만... 여기서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해도, 넌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러 나갈 거잖아. 아키토. 그래서, 놓아주고 싶지 않아.
시노노메 아키토:(나를 끌어안고 제 품에 얼굴을 숨기는 네 모습에 몸이 굳어버리고 만다. ......내가 얼마나, 뭘 견뎌왔는지도 모르고, 어째서 널 사랑해서 사람까지 죽였다는 녀석한테 이렇게 순순히 몸을 내주는 거야.) ...그럼 밤새도록 이러고 있을 생각이냐고, 너......
(극심한 고뇌와 판단 끝에 너를 마주 끌어안자 네 체향이 기분 좋게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몸에 힘이 빠져나가면서 심장이 달콤하게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몸을 붙였으니 분명 네게도 나의 고동이 느껴질 것이다. 너와 더 밀착하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껴안은 팔에 힘을 주다가 네가 아플 거라는 생각에 겨우 빼고, 이럴 때가 아니라며 기다란 연애편지처럼 느껴지는 네 말을 황급히 정리한 뒤 붕 뜨려는 기분을 애써 억제하면서 하나씩 대답하기 시작한다. 대답해야 하는 말을 잘 챙겼는지 모르겠다. 개중에는 듣기 싫은 말도 있었으므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땐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우선은 실망시켜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하게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하기로 한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네가 생각하기에는 잘못된 길이겠지만 나는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내 믿음을 존중해줘, 토우야. ...아니, 존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너도 같이 믿어준다면 나는 분명 행복해질 테니까, 가능하면 나와 함께 이 길을 믿어줘.
...네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동안 나는 네 녀석이 밉지 않았어. 애초에 내 쪽에서 숨겨왔던 거니까 당연한 거고...... 나는 네 녀석이 나를 떠나가지만 않으면 돼. 네가 그 녀석들로부터의 위협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순간이 오면 나도 행복해질 거야.
그러니까 나를 막지 마. ...내가 죽여야 하는 녀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곧 모든 게 끝날 거야, 토우야.
아오야기 토우야:실망하지 않았어. 다만, 아키토가 생각하기에 최선의 길이 이것밖에 없었을까. 라는 생각이 조금 들지만, 아키토라면 분명 최선을 선택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그러니까, 응. 널 믿어. 아키토. 밉지 않았다면 그걸로 다행이지만, ...아키토는, 아키토는 네 곁에 더 있고 싶진 않은 거야? 아키토가 생각하는 계획대로라면, 분명 아키토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존재라며 사형을 내릴지도 몰라. 단순한 구금형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단 뜻이야. 그래도, 아키토는 그래도 괜찮아? (뒤섞이는 심장 고동 때문에 이것이 누구의 심장 고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흐느껴서 운다면, 너는 다시 울지 말라고 그러겠지. 자신이 입 밖으로 말한 것을 후회할지도 몰라. 알아차린 것이 뒤늦은 사람인 나는, 이미 모든 걸 결심한 너를 보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어깨 위에 묻은 얼굴을 천천히 떼어낸다. 크게 들리던 심장 고동이 거리가 벌어지자 고동의 소리가 섞이지 않아 온전히 자신의 고동만이 들려온다. 마치 심장이 거대한 불구덩이에 놓여진 거 같다. 갈증이 날 거 같고, 숨이 막히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더욱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응. 막지 않을게. 그것이 아키토, 네가 선택한 최선의 길이라면. 아키토가 선택한 길이라면 난, ...막으려고 할 수조차 없을 거야.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네가 이미 다짐한 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고, 내 여린 바람으로는 전혀 무너지지 않을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약속해줘. 아키토. 널 영원히 보지 못하는 건 싫으니까,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잡히지도 않고.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겠지만, 난 아키토가 살아있었으면 해. 차라리 먼 곳으로 도망쳤다가, 사건이 잠잠해지기 시작하면, 그즈음에 다시 얼굴을 비추어도 괜찮으니까... 그러니 부디, 살아만 있어 줘. 아키토.
시노노메 아키토:......죽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토우야. 만약 내가 널 지키기 위해 이미 내 목숨을 맞바꿔놓은 상태라면......
...아니, 방금 전의 말은 잊어. (맞붙는 동안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너의 심장 소리를 기억하고 흔들리는 눈을 감는다. 살아만 있어 달라는 네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여러 감정이 한데 섞여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진다. 네 간절한 부탁을 들으면서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해도 그건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하다. 나는 그 부탁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을 남기는 게 상대방에게 잔혹한 짓일 정도로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죽지 말라는 네 녀석의 말에는 답해줄 수 없어. 너와 함께 있고 싶지 않냐는 말에도 마찬가지야.
(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계속 듣고 싶다. 너답지 않게 뛰고 있었던 네 심장의 고동이 마음속에서 아른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널 끌어안고 싶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한 번 맞붙고 나니 너와 떨어져 있는 이 조금밖에 안 되는 거리가 너무나도 괴로웠지만, 네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래에는 그저 슬프고 지친 기색으로 널 바라봤다.) ...미안. 나, 아침부터 피곤했으니까 이제 쉬고 싶은데.
아오야기 토우야:(날 지키기 위한다는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감이 느껴지는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알 거 같다. 아키토는 항상 이런 면에서는 누구보다 신중을 가했으며, 무게감 또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 않은가. 무엇하나 해줄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이 그저 밉기만 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예의로 배운 행위와, 정해진 행동들 뿐이다. 실에 묶인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움직이는 자신의 권위라고는 보잘것없었으며, 할 수 있는 행위 또한 제한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머릿속에서 상기시키면, 정말 자신이 볼품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국엔 네 다짐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보잘것없는 내 자신이 행위를 이어간다고 해서, 너에게 내가 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두 눈을 내리감았다. 어쩌면 이 모습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잡을 수는 없다. 너의 다짐을, 네가 바라는 것의 편에 서기로 한 내가 어찌 그러겠는가.) ...더 답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네 결심을, 한낱 불어오는 바람으로 어찌 막을 수 있겠어. 네 결심을, 이곳에서 응원할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도 좋으니까. 알겠지?
(이제는 놓아야 한다. 더 이상 무게를 주어서도 안 된다. 버리는 것은 어릴 때부터 가장 잘하던 행위가 아니었던가.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내 스스로의 욕심을 버려왔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결혼을 다짐했을 때에도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에 있던 강요를 당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이제는 정말로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자 내 마지막 실 같은 희망을 놓을 때가 왔다. 옅은 웃음을 지으며 어깨 위를 두어 번 토닥이고 고개를 돌렸다.) 힘든데 찾아와줘서 고마워. 아키토. 이제 들어가서 쉬어.
당신이 그렇게 말하자 지친 기색을 한 아키토가 당신의 말에 힘없이 수긍하고 몸을 일으킵니다. 끌어안고 있던 게 무색하게 떨어져 버리는 그와의 거리. 어쩐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리는 당신의 방문.
문이 닫히자 숨이 막힐 것 같은 고요가 찾아옵니다. ...완전한 단절.
그 뒤에는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침이 옵니다.
KP:결혼식 다음 날의 동이 텄습니다. 아침부터 집안이 분주하면서도 침잠한 이유는 어제의 살인 사건 때문일 겁니다.
시종에게 들은 바로 오늘은 엔도 카미코의 부모가 오기로 했습니다. 두 집안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함이겠죠.
가족들의 분위기는 당연히 좋지 못합니다. 좋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가문의 위상을 위해 붙잡은 정략결혼이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됐으니까요.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서 단장을 받는 한편 엔도 부부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당신은 문득 나쁜 예감이 듭니다. ...어제, 아키토는 분명 '이번에는 거물을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만요. 그의 다음 타겟은, 설마.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아키토가 평소에 자주 가 있던 장소를 떠올립니다.
부엌,
휴게실, 그리고
뒷마당. ...당장 떠오르는 곳은 이 세 곳 정도입니다. 원하는 경우 그곳들로 향해 아키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어디도 찾아가지 않는 선택지도 가능합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우중충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간다. 카미코 씨에겐 죄송한 이야기지만, 지금 그녀와 관련된 생각은 하나도 나질 않는다. 그저, 편히 눈을 감았길 바라며 이 치장이 끝나기까지 가만히 ‘약혼자를 잃은 사내’의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 그저, 지금은 단 한 사람만이 내 생각에 머물러 있다. 아키토. 거물이라고 하였으니, 아마 오늘 찾아오는 두 사람을 죽일 것이 분명하다. 말리지는 못 할 테니, 마지막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키토는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든지 숨을 수 있고, 어느 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 너를 내가 마지막으로 막을 수 있긴 할까. 아니, 내가 너를 찾을 수 있긴 할까.)
(치장이 끝나고 난 후에 평소라면 곁에 있을 네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어쩌면,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이런 나날이 계속될 것이라고.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유일한 내 친우이자, 어쩌면 지금도 내 머릿속을 벗어나지 않고 어제의 네 마지막 그림자만을 떠오르고 있는 나인데. 찾지 못하여도 괜찮다. 그저, 너와 마주한다면 너의 모든 것에 대한 무운을 빌어주고 싶다.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저 네 계획을 잘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언젠간 나에게 말하러 와주겠지.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다만, 그래도 작게 빌어보고 싶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며 천천히 뒷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고 보니, 당장 이틀 전에, 너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는 이럴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지. 우스운 일이다. 날 좋아한다고 말한 너에게 그런 말까지 했으니. 아키토는 말로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미워했을 수도 있다. 그야, 식이 결정되고 난 이후에는 전부 네가 티를 내주었는데, 난 그걸 외면하고 살았으니까. 그런 우중충한 생각에 잠기며, 걸어 나갔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운이 좋게도, 뒷마당으로 향한 당신은 마당 정원을 가꾸고 있는 아키토를 발견합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그가 있는 정원에는 보라색 히스 꽃이 가득합니다. 당신은 무수하게 읽었던 책 중 한 권에서의 내용을 토대로 히스 꽃에 대한 정보를 떠올립니다. 히스 혹은 에리카. 진달랫과 에리카 속에 속하는 모든 소관목들의 총칭. 꽃말은... 고독.
(To 아오야기 토우야): 자세히 보면 아키토는 정원을 가꾸는 게 아니라 무의미하게 꽃을 꺾고 있습니다. 한 가지씩 떨어지는 히스 꽃줄기를 눈으로 좇으면 관목의 아래에는 꺾여 있는 꽃줄기들이 즐비합니다. 아키토의 얼굴에는 쓸쓸함과 긴장이 서려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그에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무슨 기분일까. 지금의 넌. 내가 함부로 네게 무어라 할 수 있긴 할까. 말리지 말라고 했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물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도 그다. 내가 너를 찾으러 왔다고, 너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너를 찾았다고 말하면, 너는 믿어줄까? 오히려 네가 준비한 모든 거사를 망치는 것이 아니고? 심란한 마음이 든다. 히스 꽃이 가득 펴있는 정원에서, 너를 그 모든 것을 꺾어내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꽃에 대한 설명은 알고 있다. 고독하다는 것을 뜻하는 꽃, 하지만 뜻은 고독함을 안고 있으면서, 꽃의 겉모습은 고독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발로 엮어있는 그 모습이, 정말로 고독해 보일까. 너는, 그리고... 그 꽃을 왜 꺾고 있을까. 지금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꽃이라는 것을 알고 싶지 않아서? 아니면, 그저...)
아키토. (발걸음을 옮겨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 사이에 네 보폭으로 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시선을 마주한 상태로 웃음을 지었다. 이게 네게 보이는 마지막 웃음이 될까? 아니면 이후에도 널 바라보며 내가 웃을 수 있을까. 쓸쓸한 마음과, 텁텁한 마음이 뒤섞여 알 수 없는 감정을 이끌어냈다. 그래도 나는 아닌 척 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무너지고, 널 신경 쓰게 만들면 분명 너는 나를 위한 선택이라며 다른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니까.) 꽃을 그렇게 꺾으면, 정원사들이 슬퍼할지도 몰라.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키운 것인데, 안 그래?
시노노메 아키토:...... (네 인기척을 눈치채고 묘하게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든다. 아무 말 없이 널 응시하면서 네 말을 듣기만 하다가, 한 박자 늦게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입을 연다.) 토우야.
(히스 꽃을 꺾던 손을 관목에서 떼고 손가락에 남은 잔여감을 제 옷깃에 닦아낸다. 얼마나 꺾어댄 건지, 손에 꽃줄기의 향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 괜한 마음에 그것을 맡아보다가 빠르게 그만뒀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면서 후각을 타고 들어오는 식물 특유의 쓴 향에 미간을 살짝 구기다가 풀고, 결국 떠오른 말을 그대로 내뱉는다.) ...어제도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 그리고... 꽃 같은 건 의미 없어. 정원사가 슬퍼하든 말든 내가 알 바는 아니잖아.
(예민한 듯 묘하게 신경이 곤두세워진 모습. 긴장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것을 숨기려는 듯 타인이 보면 비아냥거린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불량스러운 표정과 발성으로.) 차라리 네가 슬프다고 하는 게 나한테는 더 먹힐 거라고. ...곧 있으면 그 녀석들이 올 텐데, 귀한 도련님이 여기에 나와 있어도 돼?
아오야기 토우야:(표정이 참 풍부하네, 넌.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은 억지로 숨기고 싶어서 더욱 풍부하게 하는 거 같아. 그리고, 어제 네가 털어놓은 감정은 단번에 정리한 거 같은 모습이구나. 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뜨고, 고개를 저었다.)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 아키토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 이렇게 둘이 남아있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걸. 꽃은, ...음. 그래. 그럼, 남이 보기에 그리 꺾어두면 외관상 보기 좋지 않으니까,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라고 해둘게.
(어투에 대한 의문은 가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 뻔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주인과 시종의 관계일지도 모르지만, 내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비밀마저 작게 고하는 친우니까. 우리는. 그래도,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웃는 모습이나, 평소처럼 대할 것을 기대했던 내 작은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네가 무엇을 앞두고 있는지 알기에 말은 더 얹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도 가의 두 분이 도착하시면 다른 시종이 나와 내게 도착했다고 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 ...그러고 보니, 아키토. 이 아래에서 보는 달빛이, 그렇게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어떤 달이 뜨더라도 아름답지 않을 거 같아. 홀로 외롭게 보는 달은, 그저 서늘한 그늘이 될 뿐이니까.
시노노메 아키토:(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 물론 좋은 쪽으로의 얼굴 변화다. 나는 이따금 평범한 사람들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토우야의 일면을 좋아하니까. ...흔들리는 눈동자에서 날카로움이 점차 누그러진다.) ...나를 보는 게 좋아? 네가 먼저 찾아온 걸 보면 확실히 싫은 건 아닌 것 같지만......
달 같은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정말이지. (어쩔 수 없이 풀어지는 표정이 결혼식 전 연회장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부드럽다. 한숨을 쉰 뒤 한결 차분해진 분위기로 네게 다가서자 너와의 거리는 쉽게 사라졌다. 원하기만 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동공이 선명하게 보이는 네 투명한 은빛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시선을 엇나가게 한다. 너보다 훨씬 혼탁한 색을 가진 내 눈동자는 아마도 짓이겨진 풀 같은 어두운색을 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지금 생각할 게 많으니까 혼자 있고 싶다고. 딱 봐도 알 수 있잖아, 그 정도는. ...살인자에게 말을 걸고 잔소리하는 건 네 녀석 정도밖에 없을 거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구만. 나를 도와주겠다고 한 거, 제대로 기억하고 있겠지.
만약에 내가, 네 손으로 나를 죽여달라고 하면. ...네 녀석은 들어줄 수 있어? 토우야.
아오야기 토우야:(쉽게 좁혀진 거리감에 두 눈을 여러 번 슴벅이다가, 짙은 올리브색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면 옅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어딘가 긴장한 모습이 가득한 상태로 바라보고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혼자 있고 싶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아키토를 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 맞아. 친우이자, 소중한 너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어. 결국, 지금 아키토가 한 행동도 나로 인해 시작한 일이었으면서. 살인자든, 뭐든. 아키토가 내 친우가 아닌 시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네가 다짐한 것을 네가 망설이지 않고, 제대로 해냈으면 해. 정말로, 아키토가 원한다면 너를 위한 패로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끝에 닿은 답은, 예상하기 어려운 답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하지만, 아키토. 내가 여태 설명한 말들을 잘 생각하면, 널 내가 죽일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으면서, 어째서 그런 말을 그런 표정으로 하는 거야. 은빛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티가 나게 흔들려 본 적이 손에 꼽을 것이다. 가족에게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데, 결국엔 내 전부를 알고 있는 친우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세상은 날 너무나도 가혹하게 만들었단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다.) ...물론이야.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그 도움이, 내가 아키토를 죽여야 하는 것이라면. 할 수 없을지도 몰라. 난 널 어떻게든 살아서 다시 만나고 싶다고, 그렇게 답을 했었으니까. 그렇지만, 아키토는... 내가 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걸 보면, 그 일이 끝나면 정말로 아키토가 죽어야 하는 상황이 온 거구나.
(차분하게 말을 이었지만, 말을 내뱉을 때마다 말끝이 먹먹하게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손으로, 너를? ...네가 없는 세상에 내가 살아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네가 이 세상에 없다면, 책 속에 있는 일어나지도 않은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고, 극 중에서 일어난 어이없는 일을 말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며, 앞으로 감정을 정말로 전부 다 억누르고 살아 모든 것을 잊은 사람처럼 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네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라면, 네가 나를 그런 패로 쓸 수밖에 없다면. 들어주는 것이 맞겠지.) 지금은, 어제의 나를 조금 미워하게 될 거 같아. 너에게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패가 되어주겠다는 그 말이 조금은 후회스러워지려고 해. 하지만, 아키토. 난 너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어. 때로는, 내 스스로가 아프더라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아키토가 그것을 소망이라고 한다면, 기꺼이 들어줄게.
시노노메 아키토:(자신을 낮추는 네 발언에 다시 미간이 구겨진다.) 그러니까 너는 내 패 같은 게 아니라고... 어제 말했잖아. 단순히 부탁하고 싶은 거니까 강요가 아냐. ...네가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 나는 그저 네 손으로 죽어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나는 반드시 그곳에서 죽을 거야.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녀석의 손으로 죽고 싶어. ......그러니까 네 녀석이 스스로 나를 죽이겠다는 결심이 서면 내 침대 아래에 있는 권총을 가지고 날 만나러 와. 조금만 있으면 나는 유치장으로 갈 거고, 네 녀석이라면 면회 정도는 쉽게 허락될 테니까.
내가 원한다고 해도 네 녀석이 억지로 하는 건 싫고... 나도 다른 녀석한테 죽으면 되니까 애매한 기분일 거라면 오지 않아도 돼. ...네가 나를 죽이든 말든 그 뒤의 일은 알아서 처리될 테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네가 귀찮아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아오야기 토우야:내가 행동하는 것은 강요로 빚어진 행동이 아니야. 내 유일한 친우인 네가 마지막으로 하는 부탁이라면, 들어주는 것이 맞겠지. 아키토는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 그러니까, 아키토가 그걸 바란다면 들어주고 싶어.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게 너에게 더 보기 좋을 테지. 옅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는 가장 잘 알겠지. 그렇지만 내 입 밖으로 고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네가 이 길을 걸어오는데 어떤 다짐을 했는지, 그 생명의 무게를 밟고 올라가는 것은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할 수 없더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네가 바라는 행동이니까.) 반드시 죽는다는 말은, 어떤 경우더라도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뜻이겠지. 아키토라면, 정확하니까.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할게.
(권총이라고 하니까, 불현듯 생각이 나는 인물이 있다. 이미 총살로 죽어버린 그 사람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한 상태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그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아키토도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할까. 그렇다면, 내 눈앞에 쓰러진 너를 봐야 하는 것도 내 몫이고, 감지 못한 채 생을 떠난 마지막 네 모습을 보는 것도 내가 처음이 되겠지. 분명 그날처럼 숨조차 쉬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네 바람이라니 어쩔 수 있겠는가.)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래. 유일한 친우의 끝을 지키는 것은 결국 나 하나겠구나. 같은 생각을 했을 뿐이야. 권총은, 응. 챙겨서 갈게.
...있지, 아키토. (잠시 머뭇거리던 태도를 보이다가, 고개를 느릿하게 저은 후에 가만히 시선을 마주한다.) 나중이면 이 말을 전하느라 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 미리 말해두려고. 아키토가 내 친우여서,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내 진실을 아는 사람이라. 정말로 고마웠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장례식은, 치러주지 못할 수도 있어. 작은 무덤을 만드는 것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너의 흔적이라고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널 기억하며 돌아오는 이날마다 너와 어울리는 꽃을 들고, 네가 좋아하는 술을 들고 있을게. 먼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한 번은 들려줄 수 있지. 아키토.
시노노메 아키토:...아아. 나를 지켜보는 건 네 녀석만으로 충분하고, 죽어서도 널 만나러 올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네 대답을 듣고는 어딘가 후련해진 낯으로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만족한 것 같은 얼굴.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약간은 아쉬워하는 낯으로 네 머리를 쓰다듬는다. 단장한 게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다가 더는 시간이 안 될 때쯤에야 손을 뗐다.) 나도 고마워, 토우야. ...네 녀석이랑 더 같이 있고 싶지만, 이쪽은 슬슬 움직일 시간이니까 말이지.
...그럼 나중에 보자고. 현관 꼴이 좋지는 못할 테니까 가능하면 천천히 내려와.
KP:아키토가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곧 당신을 지나쳐 걸음을 옮깁니다. ...지독한 풀 냄새. 그가 사라진 뒤 홀로 남은 정원에 서 있으면 바깥에서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윽고 하인이 찾아와 당신에게 현관으로 내려갈 것을 이릅니다. 당신은 그 말에 현관으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관으로 향하는 걸음은 느렸던가요, 빨랐던가요. 그렇게 현관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To 아오야기 토우야): 너무나도 확실한 총소리. 그것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당신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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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이 현관으로 향하면 그곳에는 아키토가 서 있습니다. 주황빛 머리카락과 바닥을 물들이는 빨강의 너무나도 강렬한 조화. 모든 이들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악에 물든 낯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아키토의 손을 보면 리볼버가 쥐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엔도 부부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 아닌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생각보다 충격을 꽤 많이 받은 듯합니다. 말로만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명백하게 다르기에.
(To 아오야기 토우야): 피가 튄 뺨을 든 아키토가 빛이 들어오지 않는 눈으로 당신을 응시하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뇌리에 박힙니다. 그 자리에서 시체를 등지고 서 있는 그와 굳은 듯이 시선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의 입술에서 소리 없는 단어가 흘러나옵니다.
’권총’.
KP:모두가 죽은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던 것도 잠시, 누군가가 소리치는 것을 기점으로 사용인들이 뛰쳐나가 아키토를 제압하고 그에게서 총을 뺏어 듭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분주한 인간들의 틈새에서 아키토는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순순히 무릎이 꿇립니다. 그 상태에서도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보는 그 눈에는 간절함과 믿음이 서려 있습니다.
마침내 경찰에게 연행되는 아키토가 당신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충격은 여전히 당신을 강타한 채 여파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 탓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지만, 당신은 생각해야 합니다.
지능 굴려주세요.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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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아키토가 했던 말을 힘겹게 떠올립니다.
’내 침대 아래에 있는 권총을 가지고 날 만나러 와.'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하나요?
아오야기 토우야:(저렇게까지 저항 없이 무너지는 아키토의 모습은 처음 본다. 하지만 나는 움직여야 한다. 살아서 죽은 사람을 연속으로 이어서 보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네가 한 말을 기억한다. 마지막 네 눈빛을 기억한다. 친우와 마지막으로 나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가 바라던 것을 해야 한다.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찬 뇌 속을 머물던 기억을 억지로 비집는다. 침대 아래에 있는 권총을 챙겨야 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벽을 짚으며 움직인다. 권총을 챙기기 위해서 아키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KP:당신이 아키토의 방으로 향하면 방의 바닥에는 잡동사니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잔소리를 해도 할 말이 없을 광경이네요.
권총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잡동사니들 중에서 수첩 하나가 유독 눈에 띕니다. 펼쳐져 있는 수첩 안에는 아키토의 자필로 엔도 가 사람들의 이름이 무수히 적혀 있습니다. 신문에서 봤던 실종 및 사망자들의 이름과 일치한 그것들은 분명 모두 그가 죽인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아키토의 글씨를 보는 게 오랜만이라서인지, 홀린 듯이 수첩을 집어 든 당신이 페이지를 넘기면 그다음에는 지역이 여러 개 적혀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 또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 최종적으로 이곳에 머무름. 가장 마지막에 적힌 글자는 '괜찮아'.
당신이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면 '거래자', 그리고 '6'이라고 휘갈겨진 글씨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미 그림이 보입니다. 글에 쓰인 것과 동일한 필기구로 그려진 걸 보면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아키토인 것 같습니다. 성의 없게 그려진 원형에 팔다리를 선으로 그어놓은 것이 그답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감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거미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를 뒤로 넘기면 왜인지 한 호텔의 주소가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시간을 돌리는 주문>이 적혀 있습니다.
생뚱맞은 주문 아래로는 이러한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문을 건 술자가 타인에게 죽임을 당하면 시간이 특정 지점에서 최대 한 달 전까지 돌아간다. 술자가 죽인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도 여전히 죽은 사람이 된다. 술자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과거로 돌아가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술자가 얻은 상처는 과거로 돌아가도 육체에 보존된다. 타살이 아닌 자살을 할 경우 술자는 사망에 이른다. 즉 타살만이 술자의 시간을 되돌리는 유일한 방법이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침대 아래를 살필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수첩을 가만히 넘기면서 내용을 살펴본다. 거미 그림, 이걸 언제 봤던 거 같은데. 거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페이지를 넘겨서 살펴본다. 시간을 돌리는 주문이라고 적혀있는데, 이런 것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밑에 쓰인 타살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네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죽여달라고 한 건가. 아키토가 이런 말을 그냥 믿을 리는 없는데, 아키토가 믿는다는 것은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아닐 테니까. 나도, 아키토가 한 약속을 지켜야겠지. 천천히 숨을 삼키고, 침대 아래를 살펴본다. 빨리 권총을 찾아서, 네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맞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넌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To 아오야기 토우야): 침대 아래를 살피면 그가 말한 대로 권총이 보입니다. 몇 발이라도 쏠 수 있도록 장전되어 있는 그것을 챙긴 당신은 가족에게 목적지를 이르지도 않은 채 저택을 나와 아키토가 구금되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이 피해자 가족과 결혼할 예정이었던 관계임을 아는 경찰들은 당신이 절차를 지키지 않고 무작정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면회를 허락합니다. 아키토가 있는 곳으로 당신을 안내한 경찰들이 방에서 나가자 철창살 너머에 앉아있던 아키토가 고개를 듭니다.
아오야기 토우야:(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고, 시선을 마주한다. 아키토는 이미 알고 있기에 답을 그렇게 한 것이겠지.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총을 들고, 너에게 겨눈 다음에 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개미 한마리도 죽여본 적이 없는 내가, 총을 들고 그것도 유일한 친우인 너에게 쏘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에게 맡겼으니, 답을 하는 것이 옳다.) 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권총을 챙기면서, 아키토가 쓴 수첩을 발견했어. 남의 것을 함부로 보는 것은 결코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아키토가 남긴 것을 보고 싶었거든. 혹여 아키토가 무언갈 적어놓지 않았을까. 싶어서 펼쳐서 조금 읽었는데, ...수첩에 이름을 남겨둔 것은, 아키토가 기억에 남겨두기 위해 적어둔 거야? 그냥, 단순히 궁금해져서. 그리고... 거래자, 랑... 숫자 6은 어째서 적어둔 거야?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아키토가 말해주는 이유를 듣고 싶었어. 하지만 정 어렵다면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시노노메 아키토:그건...... 아니, 내가 관리를 부실하게 한 거니까 너한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 (수첩에 휘갈겨놨던 것들을 기억에서 급히 되짚으면서 눈을 가늘게 한다. 다른 건 별로 상관없지만 네가 봤다고 했을 때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를 정보가 하나 있었다. ...주문에 대한 것이다. 수첩에서 '그 주문'에 대한 지식을 손에 넣었다면 이번 회귀에서는 네가 기억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만이 모든 것을 안 채 너를 위한 살인을 완전히 끝내고 나면, 나는 단순한 살인마로 생을 마감하게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나에게 자책감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되는 일은 없어질 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네게 경멸을 받으면서 눈을 감을 각오도 이미 해둔 참이었다.)
(한편으로는 홀로 남은 네가 나를 평생 애달프게 그리면서 저물기를 원한다. 네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게 돼서, 목숨을 바칠 정도로 너를 사랑했던 나를 잊어버리는 건 싫으니까. ......하지만 내가 너를 위해 살인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 네가 내가 달래줄 수 없는 곳에서 계속 슬퍼하면서 살아가는 게 더 싫다. 그러니까 이것만큼은 제 입으로 말해줄 생각이 없는 정보였다. 죽어서도 날 사랑해주길 원하는 내 욕심보다, 내가 네게 있어 그저 영문 모를 연쇄살인범으로 남는 것보다, 아직까지는 너의 행복이 중요했으므로.) ...이름은 그 녀석들을 차차 죽이려고 적어놨던 거고, 나머지는 별 의미 없는 것들이야. ...너, 그 수첩에서 본 건 그게 다야?
아오야기 토우야:역시 보지 말 걸 그랬나. 음... 거미 그림을 봤어. 아키토가 그린 그림이야? 사실, 그 그림을 수첩에서 본 것뿐만 아니라... ...어느 주변에서도 비슷한 걸 본 기억이 있어서 그래. (사실 이것을 묻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어딘가 네 표정이 경직된 모습이 보인 거 같아서 불편한 질문이라 생각하고 질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키토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할 테니까. 혹여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네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에 그 뒷면에서 본 내용은 입을 닫기로 한다. 내가 기억하더라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아닌 척만 한다면 아키토는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만일 돌아간다고 해도,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는 어디론가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그것 말고 본 것은 없는 거 같아. 무슨 의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구나.
(미안, 아키토.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러지 않으면 넌 또 스스로 힘들어할 것이 분명하니까. 차라리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겉으로만 아닌 척을 해낸다면 너도 잘 모를 테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을 조금 의식해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일이고, 네 앞에서만 보였던 행동을 조금 더 신경 쓰면 그만이니까. 난,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그렇지만 그 기억을 끌어안고 산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겠지. 여기서도 잘 행동해야 해. 아키토가 스스로 총구를 들이밀고 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겨야 해. 그러지 않으면, ...아키토에게 어떤 기회도 줄 수 없는걸.) 아키토, 마지막으로... 먼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부디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네가 뜯어낸 히스 꽃보다 너에겐 잔잔하고 맑은 하늘에서 흔들리는 은방울 꽃이 더 잘 어울리니까.
시노노메 아키토:(그 말을 듣고 안도한 듯한 표정이다. 그 대신 이어지는 영양가 없는 질문에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내린다.) 아아.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고 해도 신경 쓰지 마. 그것도 별 의미 없으니까.
(다시 바라본 네 얼굴이 묘하게 굳어져 있는 것을 보고 단순히 자신을 죽여야 하는 데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죽어서 여행 같은 걸 할 수 있을지 어떨지 우리 같은 인간은 모른다. 만나러 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사후세계에 대한 것은 어떤 것도 모르는 주제에 멋대로 그것이 있다고 믿고 죽음 뒤의 안녕을 기원하는 너는 어쩌면 조금 웃길지도 모른다. 아니면 슬픈가. ...아니, 누구보다도 똑똑한 네가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지껄여주는 게 기쁘다. 그 정도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게 와닿아서, 이쪽도 멍청한 대답을 되돌리고 만다.) ...죽어서도 행복하게 지내는 게 당연하잖아. 그리고... 은방울 꽃이 가장 잘 어울리는 건 나보다는 너야, 토우야.
(이런 너를 보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일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따라와준 너는 내가 꿈에서나 그린 모습이다. 다음 생으로 가면 그런 너는 어디에도 없겠지만... 후회하지 않아. 나는 지금의 네 모습으로 이미 충분히 구원받았으니까. 그런 얼굴로 웃는다. 네게 보여주는 일이 극히 드물어졌던, 자신을 가지고 호기롭게 웃는 얼굴로.) 그럼 이제 죽여줘. 나는 후회하지 않으니까.
아오야기 토우야:(그 뒤에 있는 부분은 보지 않았으면 했구나. 넌. 하지만 이미 봐버리고 말아서, 어떻게 될진 모르겠어. 아키토. 말하면, 정말로 네가 걱정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편이 좋겠지. 침대 밑에서 가지고 온 권총을 들고 탄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빗나가는 것을 대비해서 탄창을 꽉 채워서 넣어둔 것이겠지. 하지만 빗나가지 않고,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총성이 울리면 그 뒤로는 들키기 쉬운 상황이 되어버리니까. 숨을 천천히 마시고 양손으로 권총을 잡은 다음에 지그시 바라보았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그걸로 됐어. 원한이 있으면 현세에 갇혀서 나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걸. 그런 걸 생각하면, 아키토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떨리는 손, 가쁜 호흡, 뺨 아래로 투명한 액체가 흐르는데, 이것이 눈물인지 땀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해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야 하니까. 턱 아래로 흘러 내려간 액체가 불쾌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마지막으로 보는 네 모습을 더 기억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한 너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너를 기억하고 싶었다. 액체로 물들어 흐릿하게 보이는 초점이지만, 반듯하게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기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자, 아키토. 그곳에선 아픔 없이 네가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길.
당신의 얼굴을 확인한 아키토가 서서히 눈을 감습니다. 이런 짓을 시킴에 조금은 미안하면서도 기꺼운 표정입니다. 눈을 감은 아키토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익숙한 듯 편안해 보입니다.
당신이 꺼낸 권총에 놀란 경찰들이 뛰어와 제압을 시도하려는 순간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탕, 소리와 함께 그대로 총알이 그를 관통하고......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림과 함께 시야가 암전합니다.
정신을 차리면 당신은 햇살이 들어오는 방에서 눈을 뜹니다. 달력을 살피면 오늘은 결혼식에서 한 달 전, 아버지로부터 정략결혼에 대한 통보를 들은 날입니다.
정말로 시간이 돌아갔습니다. 엔도 집안에 혼기가 찬 다른 영애가 남아있지 않다면 오늘 당신은 정략결혼에 대한 통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엔도 가와는요.
...그렇다면 지금, 아키토는 어디에 있을까요?
(To 아오야기 토우야): 아키토의 방으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분명 권총을 들고 있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는 방 안입니다. 정말로 돌아왔구나. 그 수첩에 적힌 내용은 거짓이 아니었구나. 안도감이 들어서 그런지, 뺨을 타고 흐르는 액체를 손끝으로 문지르다가 티가 나지 않게 손수건으로 살포시 눌러서 닦은 다음에 주머니에 넣습니다. 아키토도, 기억을 하고 있을까. 아니지, 기억을 하더라도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을 해서는 안 돼. 아키토도 그것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고, 너의 걱정을 늘리고 싶진 않으니까. 손수건을 안쪽 주머니에 잘 챙겨 넣은 다음에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에 있을까. 넌. 이 넓지만 좁은 곳에서 네가 있을 곳이 그다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기억도, 어느 것도 잘 모르겠지만. 결국에 내가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본인의 방이 아니면 지금은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도 않았을 테니, 반드시 이곳에 있겠지. 이곳이 아니라면, 밖에 잠시 나갔거나. 잘은 모르겠지만, 우선 아키토의 방문 앞에 서서 숨을 두어 번 삼키고 내뱉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문을 두어 번 노크를 한다. 최대한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전한다. 이곳에 돌아와서, 네게 처음으로 내뱉는 한마디.) 아키토, 있어?
KP:당신이 아키토의 방 앞에서 그를 불러도 방문 너머는 조용하기만 합니다. 고민 끝에 아키토의 방문을 열면 그곳은 텅 비어 있습니다.
단정하게 깔린 이불과 텅 빈 방안. 모든 짐이 빠져나간 그곳에서 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관찰 굴려주세요.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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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책상 아래의 서랍 하나가 아주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서랍을 열어보면 거미의 얼굴이 그려진 공책이 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이 그 공책을 펼치면
아이호트의 일족이 지배한 숙주 명단과
숙주의 근원지인 엔도 가문의 가문원 명단이 나옵니다.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거미 그림과 함께 숙주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아이호트의 일족이라는 작은 거미 같은 생명체가 인간의 몸을 차지하는 내용. 그리고 그 수를 늘려 가려 한다는 내용. 그렇게 마침내 저들의 신을 불러 모시려 한다는 모독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런 그들의 다음 숙주로 점찍힌 이가 당신이라는 것까지.
(To 아오야기 토우야): 아키토가 그들을 죽인 이유는 이것인 것 같습니다. 그 아래 휘갈겨진 한 문장은 틀림없이 그의 글씨입니다.
지키겠어.
(To 아오야기 토우야): 하인에게 물어보면 그의 행적에 대해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입니다.
아오야기 토우야:(텅 빈 방, 일부로 치웠거나, 아니면 아키토가 이미 짐을 챙겨서 나갔다는 뜻이 되겠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주 조금 열려있는 서랍을 열어 서랍 안에 있는 공책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이호트 일족, 숙주, 엔도 가문... 그리고 다음 숙주로 정해진 것이 나라는 것. 놀라서 공책을 바닥 아래로 떨어트렸다가, 마지막에 아키토의 필체로 지키겠다는 문장 하나. 아키토가 말할 수 없었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이걸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을 텐데. 그래도 말하지 않았다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숨겨야 하는 이유가 있던 걸까? 아니, 애초에 이것이 숨겨야 하는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공책을 챙긴 다음에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 사람에게, 그러니까... 아키토와 가까운 사이에 있던? 아니, 가까운 사이에 있던 사람은 없던 거 같은데. 그냥 행적만 알면 될 테니, 주변 하인에게 물어도 괜찮겠지. 하인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 다음에, 곧은 시선으로 시선을 마주한다.) 혹시, 아키토를 본 적 있어?
하인:아키토는 방금 떠났는데, 아오야기 님께 인사하고 가지 않았나요...?
제가 아키토랑 나름대로 대화하고 지내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짐을 챙기더니 저를 보곤 마지막으로 남은 일 처리가 있다고 했어요. 그것만 말하고 저택을 나가서... 자세한 정황은 저도 잘 모릅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나갔다니, 어디로?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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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시간을 되돌리기 전 아키토의 어질러진 방에서 발견했던 수첩의 내용을 떠올립니다. 거미 그림이 그려진 페이지 뒤에는 분명, 한 호텔의 주소가 적혀 있었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본능적으로 깨닫습니다. 그의 살인은 엔도 부부를 종점으로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곧 끝난다고 했지, 그들을 죽이는 게 끝이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요.
(To 아오야기 토우야): 근거가 없는 추정이지만 그가 주소에 적힌 호텔로 향한 게 맞다면 거기에도 엔도 가문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아키토의 손에 의해 새로운 살인 사건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
하인:그러고 보니 아키토가 나가기 전에 아오야기 님에게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었습니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시라고......
아오야기 토우야:(이미 알고 있던 걸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 가만히 기다리라고 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래도, 이미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정신을 차리고 이곳으로 발걸음한 이유가 당연히 너였음을, 네가 멀쩡한 정신으로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너의 행복을 바란 사람이기에, 다시 네 손에 피가 묻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아키토. 나는...)
...잠시 외출하고 올게. 하지만, 어떤 녀석도 따라오지 말라고 전하고. 아버지가 물어보시면 잠시 정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전해줘. (네 말을 어길 수밖에 없다. 조금 과한 생각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또다시 피바람이 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이 끝에서, 네가 행복하길 바란 것은 진정으로 원했는걸. 다시, 다시금 네 손에 피가 묻길 바란 것이 아니야. 입술을 꾹 깨물고 마지막으로 남긴 네 흔적을 다시금 생각한다.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장소로.)
KP:당신은 아키토의 수첩에 적혀 있던 호텔로 향합니다. 어떻게든 도착한 호텔 안으로 발을 디디면 아키토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연하지만 막막한 일입니다......
이럴 때 아키토가 있으면 듬직했을 텐데요. 낯선 사람들만이 지나다니는 가운데 나약한 생각을 하기도 잠시, 프런트에 있는 호텔 직원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키토에 대해서든 엔도 가에 대해서든, 정보를 얻을 구석은 호텔 직원밖에 없어 보입니다.
엔도 가의 사람이나 아키토가 여기에 있는지. 있다면 어느 호실에 묵고 있는지...... 비밀 엄수가 기본인 호텔 직원에게서 어떻게 정보를 끌어낼지 고민하고 있던 당신의 귀에 로비 내부의 전화 내용이 들립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직원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은 룸서비스를 시키는 전화인 것 같습니다. 전화가 끊어진 뒤 직원들이 저들끼리 무어라 대화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엔도 가의 사람들이야. 외출도 하지 않고 2주 동안 매 끼니를 룸서비스로 해결하다니......' '숨어서 사는 것 같아서 뭔가 불안하다니까. 901호실 맞지?'
(To 아오야기 토우야): 이 정보를 토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생각보다 좋은 타이밍에 도착했다. 호텔 직원들에게 어쭙잖은 행동으로 오해를 사는 것보다, 이렇게 정보를 얻는 편이 더 좋으니까. 901호라고 했던가? 그럼, 아키토는 이 사람들이 이 호텔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걸까? 과거랑 달라진 점이 없어서, 그래서 알고 있던 것이라면, 아키토는 이즈음부터 엔도 가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던 거 같기도 하다. 우선, 아키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 901호로 올라가면 되겠지. 901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고 보니, 파티 날에 본 엔도 가의 사람들은 전부 안색이 방 밖으로 나온 지 오래된 것마냥 창백했었다. 그때도 그리 오래 나가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 엔도 가의 사람들은 전부 이곳에 있었던 걸까. 숙주가 이곳에 거처를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아키토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사람들과 동시에, 그 숙주까지... 정말이지, 아키토는 항상 무모한 짓을 남에게 말하지 않고 하려는 경향이 많다. 너에게 총을 쏘기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 않나. 만나면, ...뭐라고 하지? 생각해보니, 만나면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의 아키토가 남긴 힌트로는 이곳에 도착할 수도 없다. 그럼 내 기억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을까?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이것과 관련한 것을 물으면, 우선 아닌 척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P:당신이 901호실로 올라가면 9층에 발을 딛기 무섭게 탕, 하는 총성이 들립니다.
얼어붙어 있을 시간도 없습니다. 901호실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아키토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으니까요. 저택의 현관에서 엔도 부부를 죽였던 때처럼 또다시 뺨에 피를 묻힌 아키토가 당황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것도 잠시, 총성에 사람들이 몰릴 조짐이 보이자 그는 이를 악물고 당신을 지나쳐 즉시 자리를 뜹니다.
아오야기 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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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아키토를 놓치고 맙니다. 총성을 듣고 시끄럽게 몰려들기 시작한 인파로 인해 그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우선은 1층으로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오야기 토우야:(결국은 했구나. 말릴 틈도 없었고, 아키토는 나를 보자마자 도망치기 바빴다. 내려가는 것이 맞겠지. 물어보고 싶어도, 지금 아키토가 아는 내 상태는 내가 그 페이지를 넘겨보지 않았다고 알고 있을 테니, 마주친 것도 아키토의 기준에서는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눈이 맞은 순간에, 나도 깜짝 놀라 어떤 말도 이어가지 못했으니까.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 있다간 나도 범인으로 몰릴 수 있다.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맞겠지. 쓰러진 것들의 정체도 의문으로 남긴 채 발걸음을 옮긴다.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물을 순 없다. 그야, 내가 봤다는 말을 차마 하질 못한 채 끝이 났으니까.)
(To 아오야기 토우야): 당신은 곧 1층으로 내려옵니다. 로비로 돌아온 당신이 소란스러운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면 누군가 당신을 끌어당겨 사람이 없는 벽 뒤로 데려옵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어두운 곳에서 고개를 들면 익숙한 얼굴이 착잡한 듯 미간을 구긴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키토입니다.
시노노메 아키토:너......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설마 다 알고 온 거야?
아오야기 토우야:(깜짝 놀라서 큰소리를 낼 뻔했다. 갑자기 벽으로 끌려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얼굴을 가만히 보니 아키토다. 마치 불편한 표정을 가득 짓고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조금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무슨 뜻이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키토가 오지 않길래, 아키토의 방으로 갔더니 짐을 다 싸고 나갔잖아. 불만인 점이라도 있었어? 그렇게 짐을 다 정리해서 갈 필요는 없었잖아.
(다 알고 왔냐는 질문에는 구태여 입을 열어 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입 밖으로 말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네가 아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 외에는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할 생각은 없다. 마지막으로 봤던 네 모습은, 전혀 아니었잖아. 이걸 말해도 괜찮을 거 같단 생각이 들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결과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네가 있었으니까. 내 감정에 스스로 솔직하지 않아도, 네 모습을 오래 봐온 나라면 안다. 그런 표정은, 일반적으로 네가 흔히 짓는 표정은 아니었으니까.) 돌아가자. 아키토. 돌아온다는 사람이, 짐을 다 빼서 나가는 건 맞지 않아.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아니. 몰라도 괜찮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여기서 본 내용도 그 누구에게 말하지 않을 테니, 내 곁에 있어 줘. 아키토가 어딘가로 사라진다면, 나 혼자서는 그곳에서 버틸 수 없으니까. (조용하지만, 결의에 찬 말투였다. 어딘가 사뭇 진지한 느낌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네 손을 깍지 껴서 잡고, 도망가지 못하게 다른 한 손으로는 옷자락을 잡았다.)
시노노메 아키토:사정이 있었어. 네 녀석의 집에 불만이 있는 게 아냐, 토우야. 그것보다는... (내 모든 것을 알고 우는 얼굴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던 토우야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그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도 잠시, 나의 행동에 대해 단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을 이 토우야는 불만스러운 낯으로 자신의 말에 가시를 세우다가 종래에는 결의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말이 묘하게 많다.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금방 돌아오겠다고 전언을 남겼는데 이 시기의 네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인가. 그것보다는 어떻게 이곳에 온 거야? 우연이라고 해도 너무 아귀가 맞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 기시감을 느끼면서 생각에 잠긴다.)
(보통 처음으로 이런 광경을 보면 충격을 받아서 혼란스러워하는 게 먼저 아니냐고. ...어떤 토우야라도 살인자가 된 나에게서 떠나지 않는다는 건 알겠다. 이건 진심으로 기쁘다. 하지만 회귀 전 살인을 토로했던 때 토우야의 반응은 울음투성이였다. 반면 내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그렇지 않아. 이 시기의 네가 살인을 목격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가능성도 없다.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너, 역시 전부 알고 있잖아.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고 다른 손으로 네 몸을 끌어당겨 욕심껏 밀착한다.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확신과 분노가 섞인 눈동자로 시선을 마주한다. 너야말로 도망가지 마.) 내가 어떻게 반응하면 돼. 나를 위해서 모르는 척을 하겠다고 생각했어?
아오야기 토우야:(아키토는 사고 회전이 빠르다. 그건 누구보다 가장 잘 안다. 모순적인 면을 이미 발견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그게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아키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키토. 그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던 네가 사라졌어. 아키토가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는 것만 할 줄 아는 어린 녀석이 아니야. 나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야. 기다리라고 하고, 모든 짐을 다 빼간 아키토를 내가 어떻게 믿어. 차라리 짐은 빼가지 말지 그랬어. (이 무렵의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의미는 없다. 과거에 네가 여기를 왔을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잘 모르겠다. 허나 확실한 것은, 너의 죄를 고한 그 시점의 나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정략혼을 약조한 것도 아니며, 하물며 이 시점의 나라면 엔도 가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을 분명하게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알지만, 나는 모른 척 해야 한다.)
아키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무엇을 전부 알고 있다고 하는지, 그마저도 정말로 몰라. 난 단순히, 아키토, 네가! 네가 중요한 거야. 방 안에 네가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이 주변을 다 뒤졌어. 그리고, 결국에 찾은 곳이 여기란 말이야. 난, 정말로... 아키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드러나기에 알기 쉽다. 그것이 적의든,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분노든. 깍지 낀 손에 가득 힘이 들어가면, 피하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도 힘을 주어 잡았다. 마주하는 것을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다. 이건, 너를 잃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 모든 것을 천으로 덮어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 삶은, 네가 주어진 이 삶은 적어도 행복하길 바라니까.) 아키토, 돌아가자.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시노노메 아키토:......정말인가...... (확신과 분노에 차 있던 얼굴이 네 말을 듣고 긴가민가한 얼굴로 바뀐다. 지금의 네가 연기를 하는 것 같다는 감상이 쉬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설명을 들으면서 의문을 놓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정말로, 그때의 토우야는 사라진 건가? 그것이 정말이라면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 스스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기운이 없어진 낯으로 아래를 바라보며 마주 붙잡은 손에서 제 손을 살짝 빼내고 네 몸을 끌어당기던 팔에서도 힘을 푼다. 온기가 떨어지자 약간은 추운 것 같다는 감상이 들었지만 왜인지 앞에 있는 너를 다시 붙잡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왜 실망하고 있는 거야.) ...그럼 알겠다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해서 미안하구만, 토우야.
(미약하게 한숨을 쉬면서 다른 곳을 바라본다. 죽여야 할 녀석들은 전부 죽였으니까 나에게는 이제 남은 시간이 없었다. 이 앞으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어디까지나 보너스의 개념일 뿐. 나는 이제 어떤 방식으로 숨통이 거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질기게 살아있었다. ...신의 장난인가. 가다가 죽어버려서 사후에도 관심을 받게 되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어디일까. 회귀하기 이전의 너와의 기억을 더듬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짐을 다 버렸으니까 네 집으로 가봤자 방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대신 정원에 있는 히스 꽃 정도는 보고 싶은데. 같이 가 줄 수 있어?
아오야기 토우야:(너무 감정을 가득 담아 말한 거 같아 들킨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리 쉽게 넘어가는 네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왜? 지금 가장 힘든 건 아키토인데, 왜 내가 아려오고 있는 걸까. 그래도 이 연기를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당연한 거 아니겠나. 네게 들키지 않으려고 거짓을 고했다. 그리고, 네가 행복하길 바라고 있기에 네 선택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 내 선택 아니었는가. 결단을 흐리지 마, 아오야기 토우야. 어중간하게 나서선 안 돼. 그래선, 네 마음에 더 혼선을 줄 뿐이니까. 깍지 낀 손이 풀리면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서린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키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을 버렸다고 해서 네 자리가 사라진 건 아니야. 그러니까, 아키토가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아. 하지만, 돌아오기 싫다면 돌아오지 않는 것도 괜찮아. 돌아오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아키토가 행복하다면 어느 길을 택해도 무어라 하지 않을게. 아키토가 돌아오지 않아도, 자리 하나 정도는 남겨둘 수 있어.
(정원, 히스 꽃. 하나도 다른 게 없구나. 당연하겠지. 나도 기억은 그대로니 마음만 먹으면 모든 말을 취소하고 네 손목을 잡고 가지 말라고 잡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부 털어놓았던 마음은 거짓이냐고 말하면서 묻고 싶었다. 너는, 나와 극과도 같은 사랑을 하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운 현실이지. 내가 택한 길이다. 네 행복을 온전하게 빌어주기 위해서라면, 모든 감정을 숨긴 채 널 보내는 것도 맞겠지.) ...그럴까. 아키토가 그러고 싶으면, 같이 가줄 수 있어. (당장이라도 속이 시끄러워서 전부 토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난 정말로 네가 행복하길 바라니까. 어딘가 한구석이 아련하지만, 웃는 낯이었다. 아오야기 토우야의 표정은 그랬다.)
시노노메 아키토:(왜 그렇게 아련한 얼굴을 하고 있어. 슬픔이 비치는 눈을 가늘게 한 채 너를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과거의 네가 한 말이 스쳐 갔다. '
잘못된 길로 걸어가는 네 모습을 바라보고, 속이 이렇게 아프고, 아련하다면... 그건 사랑의 감정일까?' ...생각해보면 그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말을 무심코 흘려버리다니, 제정신이 아니잖아. 가장 중요한 걸 두고 당장 듣기 싫거나 정정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만 열변할 정도로, 그때의 나는 네 이야기를 제대로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건가. 모든 것이 끝난 뒤 숨통을 트고 널 마주하니 그제서야 놓쳐왔던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착잡해진 얼굴로 너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네 뺨을 살짝 쓰다듬는다. 지금의 네게서 과거의 너를 겹쳐보는 듯, 무심코 자신도 아련해진 얼굴을 한 채 망설이는 입을 살짝 열다가 만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너는 마치 사랑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
(과거의 네가 기억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면 지금쯤은 네 감정을 네 스스로 정의할 수 있게 됐을까. 그런 헛된 생각을 하면서 네 귀나, 머리카락 같은 곳을 무심코 매만지며 침묵한다. 눈앞에 있는 이 토우야는 그 토우야와는 다를 것이다. 여러 번이나 회귀하면서 이런 경우를 겪지는 못했지만 왜인지 실제로도 이미 여러 행동이 달랐다. 첫 번째에서 다섯 번째 회귀까지는 네 몰래 행동했으니까, 단순히 시간을 돌이킬 때마다 토우야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눈치채는 게 늦은 걸지도. ...어쨌거나 지금의 너는 나에 대한 감정을 이성적인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자극을 줘서 나에 대한 감정에 대해 다시 의문을 떠올리게 할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단념했다.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지만,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니까. 네가 사랑 때문에 울지 않길 원해서.)
(그저 담담한 얼굴로 웃으면서 네 손을 붙잡아 이끈다. 이제야 꽤 의연해진 모습이었다. 네게 고백하는 날이 온다면,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그럼 갈까, 토우야. (어느덧 오후가 되었지만 저택으로 돌아가면 한밤중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돌아가는 동안 뭐라도 먹을까, 하고. 종말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면서 저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언제 소멸된다고 해도 그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게, 지금에 집중하자고 생각하면서.)
밤이 되어 저택으로 돌아온 당신은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지도 않고 짐만 둔 채 정원으로 향합니다. 당신이 정원으로 나가면 먼저 도착한 아키토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달빛 아래 히스 꽃 무리에 섞인 아키토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지쳐 보입니다. 꽃 무더기 사이에 주저앉듯 앉는 모습은 그가 일어설 기운조차 없어졌음을 알립니다.
단추를 대충 여민 셔츠 사이로 그동안 당신이 보지 못한 상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의 몸에는 온갖 상처가 가득합니다. 그중에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을 만큼 깊은 것들도 있습니다. 어디서 얻어온 흉터인지 모릅니다. 아니, 당신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분명 과거로 회귀하면서, 무수한 살인을 함으로써 얻은 것들이겠죠. 당신이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달빛 아래에 비춰지는 아키토가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흐릿하게 느껴지는 게 아닙니다. 흐릿합니다.
제 몸을 살핀 아키토가 느릿하게 중얼거립니다. '이제 끝인가......'
아오야기 토우야:아키토. (너에게는, 이 이후의 끝이 정말로 없어서 나에게 그렇게 말한 걸까. 처음으로 네가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 내가 뭐라고 네 전부를 바쳐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많았는데,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네게 의심을 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기억이 없는, 이곳에서의 나는 무엇하나 모르는 상태의 나다. 네가 날 위해 어떤 짓을 해 온 건지도, 내 손으로 네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 것도 모르는 나 자신이다. 하지만, 지금 네 모습은 당장이라도 저 멀리 떨어질 거 같은 모습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른 가지에 남은 마지막 잎새처럼 말이지.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표정을 풀고 옆에 가만히 앉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다. 많지만, 네게 전부를 전할 수 있을까? 아니,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네게 무언갈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히스 꽃, 꺾진 않았구나. 꺾고 있었으면 내가 아키토한테 서운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하고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웃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의 행적을 생각하면 이 시점의 나는, 이런 웃음을 짓지 못했다. 아니, 웃음조차 제한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아키토, 이젠 정말로 가는 거지. 오늘 만난 기적처럼, 그런 일은 없겠지. ...솔직히 말하면, 응. 아키토가 돌아온다고 했지만, 아키토를 찾고 싶어서 나가긴 했어. 아버지에게도 어떤 말을 전하지 않았고, 하물며 그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은 상태로 뛰어나갔거든. 그만큼, 아키토가 사라질 거 같아서 무서웠나 봐.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니까. ...내 행동은 의미가 없었을지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어. 기적 같은 일이, 잠시라도 내 눈에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시선을 마주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일어나서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버렸다.) ...고마워. 아키토. 이 말을 전하지 않았던 거 같아서.
시노노메 아키토:(...좋은 의미로 심장이 뛴다. 나는 이 느낌을, 알고 있었다. 들리우는 네 목소리에 울 것 같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힘겹게 말을 토해낸다.) ......의미, 없지 않았어......
(사실은 쭉 너와 함께하고 있는, 혹시 그런 내가 이렇게 슬프고 사랑이 절절하게 흘러넘치는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엔딩 같은 건 사실 겪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이곳에서의 나는 그저 힘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잘못이었다. 이상한 광신교도 같은 게 너를 잡아먹으려는 게 문제였다. 너는 잘못하지 않았어. 이곳에서의 우리 관계의 패인은 그저 운명이었다. 네가 읽는 책에서나 쓰일 것 같은, 비극적인 결말.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너와 마음이 엇갈리고, 서로 자신을 숨기고, 얼굴을 붉히면서 끝까지 힘들어질 일은 없었을 텐데. 어쩌면 너와 행복한 사랑을 하게 되는 날이 왔을 수도 있는데. 결혼을 하는 날도, 어쩌면 그렇게 해서 늙어서도 행복하게 저무는 나날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젖은 눈이 달빛을 받아 시야가 흐릿해진다. 그러면서도 그토록 원하던 빛을 받은 것 같다. 볼품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울리면서 제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는다. 이런 얼굴은, 보여줄 수 없었다.) 네가 와줘서 기뻤어. 전부 끝내고 너한테 돌아갈 생각이긴 했지만, 그럴 시간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아오야기 토우야:아키토는 역시, 히스 꽃이 아니라 은방울꽃이 어울리는 사람이야. ...급하게 돌아오고, 오자마자 바로 달려와서 너에게 줄 은방울꽃이 하나도 없다는 것만, 그거 하나만 조금 불만이 커. 안겨주고 싶었거든. 은방울꽃. (손을 뻗는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면, 너에게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정말 소설과 극 중에서 보는 가장 최악의 결과라면, 나는 그 최악의 결과를 걸어도 괜찮지만, 너는 부디 그 길을 걷지 않았으면 했다. 여태 네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후회하는 길이 많았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한편으로 원망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그저 너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시간을 뒤로 감는 건 없겠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잖아. 그 일은. (앞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품에 널 가만히 끌어안았다. 사랑이라는 건, 정말로 아프고 아려오는 거구나. 네가 내 곁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난 너를 놔주는 것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면 왜 이리 매정하게 구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럽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네 목숨 말고 내 것을 가져가지.)
...기쁘다면, 다행이야. 아키토. 너무 오래 달려왔잖아. 그러니까, 쉬고 싶다면 이제 쉬어도 좋아. 아키토. 기억하지? 그곳에서는, 아키토가 아프지 않고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길 빌었는걸. 분명,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여행하며 볼 수 있을 거야. 아키토가, 아키토가... (입술을 꾹 깨물고 흘러넘치려는 눈물을 참아냈다. 울지마, 아오야기 토우야. 할 수 있어. 여기서 우는 모습으로 끝을 보일 순 없잖아.) ...아키토가 더는 무리하지 않고, 스스로를 던지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아키토는 살 수 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빌어줄 테니, 행복하게 살아야해. 여행하는 도중에 내가 떠올라도 돌아오지 말고, 그저 네 행복을 위해서 나아가. (목이 막힌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내 말이 떨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아직 너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처럼 보였다.) 아키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해도 될까.
시노노메 아키토:(네가 제 앞에 서는 것을 느끼고 무릎을 꿇는 것도 느끼지만 고개를 들지 않는다. 아니, 들 수 없었다. 끌어안은 무릎이 축축해지고 있었던 탓이다. 너무 오래 달려왔으니까 이제 쉬라는 말, 아프지 않고 행복한 삶을 찾으라는 것까지는 좋아. 하지만, 내 평생에 너보다 좋은 사람은 없어. 너 이외의 행복은 없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미래에 대한 건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것이라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너에게 진심이었다. 늘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불만 같은 건 말하지 않은 채 인형 같은 무표정 아래에 그림자를 숨기고 살아가는 바보 토우야. 한때는 뭔가를 숨기는 널 이해할 수 없어서 화를 내라고 보챈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알고 있었다. 사랑을 하면서, 싫을 정도로 알게 됐다. 자신이 고통스러움에도 자신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인간은 멍청하게도 자신을 희생하고 마는 것이다. 명예니 뭐니 해도 결국 가족이 소중하니까 결혼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 않은 거겠지, 너는. 너는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다. 너를 좋아하지 않는 녀석에게도 멍청할 정도로 착하게 굴고, 진심을 다한다. 척박한 세상에서 그런 네게 감화되는 자신이 있었다. 네가 내 앞에서만큼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으면. 네 나이 때 하지 못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너를 위하는 마음이 싹트면서 언제부턴가 마음은 깊어져만 가고, 결국 나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너를 사랑하게 됐다. 그러니까 널 위해 죽는 이 순간을 기껍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네가 나 때문에 울 것 같은 목소리를 울린다. 죽을 만큼 미안하다. 그리고, 그런 네가 이 뒤로 할 말이 무엇인지, 염치없게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원하지 않으면서도 애가 닳아 죽을 만치 원해왔던 온기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따뜻해서 이대로 몸이 사라져버릴 것 같다. 들키지 않게 그를 피하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사랑을 하면 인간은 멍청해진다고, 그건 몇 번 들었으니까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무슨 자신이었던 거야, 나. 이렇게 한심한 모습을 하고...... 그런 생각에 피식 웃으며 처진 눈썹으로 고개를 든다. 눈물이 흘러넘친 눈가가 옷깃에 번져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꽤,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아. 해도 돼, 토우야. ...네가 하고 싶은 말, 나도 답을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아오야기 토우야:아키토, 기억나? 내 머리가 흐트러졌다고, 그러면서 자리에 앉아보라고 하면서 아키토가 했던 말을 기억해? 아키토가 그때 내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내 곁에 있어 줄 수 있냐고 했었지. 그때 한 답에 거짓이 있어. 내치는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너를 내치지 못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널 내치겠어. 카미코 씨가 죽은 날에 아키토를 불러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행동은, 널 막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널 막고 싶었어. 날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맞바꿨다는 네 말을 듣고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지. 라며 후회하기도 했어. 아키토의 수첩을 찾기 전까지는 그랬는데, 수첩을 보고 나니까 차라리 아키토에게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주지.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런 걸 몰랐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아픈 결말은 없었을 거 같아서. 하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 없잖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내 기억에 진하게 남아버린 널 내가 어떻게 잊겠어. 그렇게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난다고 해서 내 기억에서 아키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 마음은... 마음은 하나도 정리가 되질 않는데. 내가 어떻게 널 보내겠어. (시선을 마주하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숨을 느리게 삼켰다. 이젠, 모르겠다. 보내기 싫어. 이대로 네 온기를 느끼지 못한 상태로 모든 것의 막을 보고 싶지 않아. 네가 없는데, 더 이상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네가 만들어준 기회야. 네가 여태 해온 모든 것을 망치고 싶지 않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먹먹한 마음에 씁쓸한 웃음을 짓고 어깨 위에 얹은 손을 뺨 위로 올렸다.) 극 중에서 볼 법한 아련하고, 뒷말이 쓴 이야기를 현실로 보고 싶진 않았는데. 아키토와 같이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 ...오늘은 정말 달이 아름다워.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워서, 지금 이 순간이 멈췄으면 하는 마음도 가득해져. 욕심을 버리라고, 참아내라고 배웠는데. 그 어떤 것보다 가지고 싶고, 내 곁에 벗어나면 의미가 없어지는 것 또한 잃어버리게 생겼는데, 내가 참아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버렸어. 그러니까, 아키토.
(마주한 시선을 가만히 응시하며 최대한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뒤에 삼킨 눈물이 얼마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가를 엄지로 한 번 쓸어내렸다. 이 밤이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밤이 지나면 네 형상을 볼 수 있을까. 네 그림자마저 보지 못할 것 같은데. 네 이름을 불러도, 네가 있을까. 갑자기 든 생각 때문에 다시금 속에서 울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울면 안 된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했는데. 결국엔 눈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고백은 눈물을 흘리면서 웃음을 짓는 고백이라고 하던데,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그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서 더욱 헛웃음만 나왔다.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나면 입을 열었다.)
좋아해. 아키토.
시노노메 아키토:(네 말을 들은 내 얼굴이 웃고 있는 채 이상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진다. 벅차오르는 슬픔과 기쁨, 사랑스러움을 견딜 수 없어 눈이 조금씩 떨리다가 서서히 진정된다. 그리고 너를 향한 온전한 다정으로 가득 찬다. ...이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보답은, 차고 넘칠 정도로 받았다. 눈물이 흐르는 네 뺨을 가만히 매만진다. 네 우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무심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하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어찌 이런 양가감정이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것에 자괴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게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내 마음을 고할 시간이었다.) ...있는 그대로 말해줘서 고맙다고, 토우야. 그리고... 미안하구만. 널 여러모로 힘들게 해서.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 알지.
날 잊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네 마음속에서 나를 살아가게 해. 네가 생각하는 나라면, 그곳에 있는 나도 분명 나일 테니까.
이런 나라도 좋아한다고 한 건 너니까, 이젠 네가 날 기억하면서 살아가 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해서, 평생 나 이외에 다른 녀석 같은 건 눈에 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네가 내 곁에 있어 줘서 나는 지금 행복해. 나도 널 진심으로 좋아해, 토우야.
그럼, 이쪽은 먼저 가 볼 테니까......
시노노메 아키토:나중에 어디선가 다시 만나자고. 그때까지는 이별이야.
그래. 보내야죠. 어쩌겠어요. 그가 바라고 있잖아요. 이 마지막 순간에, 그저 곁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듯이…
달빛 아래 당신에게 가만히 기댄 아키토는 어느 순간 목소리를 잃었습니다. 감은 눈꺼풀과 잦아드는 숨. 숨결.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수많은 히스 꽃들이 향을 내뿜으며 당신의 주위를 감쌀 때,
달빛이 그의 몸을 둘러쌀 때, 그래서 눈부실 때, 이 풍경이 견디기 어려워졌을 때,
품 안이 가벼워집니다. 빛이 허공에서 맴돌고 누군가의 체온이 완벽하게 사라집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바람이 불었던가요. 풍경을 메우는 꽃잎이 그저 아름답습니다. 그만큼 서글픈 것입니다.
(To 아오야기 토우야): ......이렇게, 아픈 이별이...
(To 아오야기 토우야): [END 2. 히스클리프]